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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칼럼 ‘언어를 말하다’
걸으며, 이야기하며

일러스트: 각각 말풍선이 달린 두 개의 입
대화로 산책을 고무하다. | © 괴테 인스티투트/일러스트: Tobias Schrank

​공원이나 가로수길을 돌아다니는 것을 에르난 데 까로는 원래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코로나 셧다운으로 인해 움츠러든 삶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그가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바로 산책이다. 왜냐하면 그가 사는 도시를 새로 발견하고 산책 중 훌륭한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이한 셧다운 기간에 폐쇄해야 하는 문화, 배움과 축제, 모임과 소비를 위한 전반적인 의 모든 장소들 중 내가 특별히 그리워하는 두 곳이 있다. 바로 실내 수영장과 영화관이다. 이 장소들과 이곳에서 내가 했던 활동들은 오래전부터 내 삶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곳들은 내가 무언가를 내적으로 고요하게 숙고하고 싶거나 혼자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찾았던 장소이다.

도시탐색

반면 고백하건대 많은 내 독일 친구들이 자기 자신과 또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찾아간다는 공원이나 숲 등 소위 자연과 나는 특별히 긴밀한 인연이 없다. 자연의 가치를 매우 높이 평가하나 나는 ‘자연애호가’는 아니다. 여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내가 태어난 곳이 인구 천만의 도시, 보고타였기 때문에 유년 시절 내게는 나무보다 건물이 더 친숙했다. 남미 사람인 내가 ‘자연’을 생각하면, 아늑한 가로수길과 전원의 숲속 빈터보다는 진짜 자연 즉 아직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영역이면서 매혹적이지만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생명체가 살고 있는 야생이 떠오른다. 누가 그런 곳에서 긴장을 풀고 꿈꾸듯 산책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편안하고 꿈꾸는 듯한 산책이, 올해 많은 혼란의 와중에 예기치 못한 반가운 사건이 되었다. 불안과 호기심, 그리고 움츠리고 살 수만은 없다는 감정의 혼재 속에서 봄에 첫 셧다운 기간 동안, 나는 매일 아침 함께 사는 나의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매력적이고 총명하며 영감을 주는 긴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는 베를린 집 앞 공원과 동네 거리를 걸었고, 모험심이 발동하는 날에는 다른 동네까지 긴 산책했다. 곧 산책은 확장되었다. 보통은 둘이서 명확한 목적 없이 걸었다. 먼저, 요즘 말하는 ‘다른 가구’ 중 나의  첫 산책 파트너로 나와 가장 친한 여자 친구와 걸었고, 나중에는 다른 지인들과 산책했다. 보통은 그전에 한 번도 의식적으로 발을 들이지 않았던 거리와 도시의 전 구역을 탐색하고, 내가 정말 살아보고 싶은 집들의 발코니를 감탄하며 걷곤 했다. 또 가끔은 나무들이 천천히 꽃을 피우는 것을 생전 처음 관심이라는 걸 가지고 시간을 들여서 관찰하며 경탄했다.

활기를 주는 교류

무엇보다 이런 산책을 활기차게 만들어 준 것은 대화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체험하는 기이한 날들, 걱정과 문제, 우리의 성공과 셧다운의 모험담, 우리의 비밀과 읽은 책 등에 대한 대화, 한마디로 ‘세상만사’에 대한 대화였다. 산책을 하며 내가 발견한 것은 자연이 아니었다. 예나 제나 나는 자연에서 감흥을 느끼지 못해 함께 산책하는 독일 친구들을 화나게 하곤 한다. 그러나 내가 다시 찾은 것은 바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오래된 열정이었다. 때론 즐겁고 때론 사색적이고 때론 슬프고, 산책처럼 그 자체로 목적은 없지만 늘 자유와 생기를 주는 대화의 재발견, 이것은 어려운 시기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산책은 인터뷰와 대화라는 문학 장르에 대한 나의 애정을 일깨워주었다. 그래서 나는 밖에서 걷는 시간 이외에 안에서 독서로 보내는 시간에는 수전 손택의 롤링 스톤 잡지 인터뷰, 당황한 사람을 위한 지침서(A Guide for the Perplexed)에 수록된 베르터 헤어초크와 파울 크로닌의 매혹적인 대화, 한나 아렌트나 제임스 볼드윈의 마지막 인터뷰 등 위대한 대화들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대부분이 쉽게 잊을 수 없는 이 팬데믹의 해가 곧 저물고 새해가 온다. 새해에도 나름의 불확실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예기치 못한 희망찬 경험 또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 반복되는 셧다운의 회색빛 추운 나날들에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답답함과 적막함이 내게도 전혀 낯설지 않다. 하지만 나는 또한 일종의 감사를 느낀다. 대화와 이야기에 대한 욕구와 감흥을 다시 찾은 것에 대한 감사를 말이다.
 

언어학 칼럼 ‘언어를 말하다’

본 칼럼 ‘언어를 말하다’는 4주마다 언어를 주제로 다룬다. 언어의 발전사, 언어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언어의 사회적 영향력 등 문화적, 사회적 현상인 언어를 주제로 한다. 언어 전문가나 다른 분야의 칼럼니스트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관심 주제에 대해 6개의 기고문을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