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서의 행위
교수님께서는 한나 아렌트의 전기 두 권을 출간하셨는데, 그중 한 권은 필독서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또한 교수님은 아렌트가 쓴 원고들을 연구용 판본으로 재출간하고 계십니다. 한나 아렌트라는 철학자이자 정치 이론가에게 그토록 매료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나 아렌트에 대한 제 관심은 우연히 생겼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어느 날 독일 데테파우(dtv) 출판사에서 아카이브에 있는 원고를 출간해 줄 수 있는지 문의하더군요. 그 원고의 제목은 <자유로울 수 있는 자유(Die Freiheit, frei zu sein)>였습니다. 이때 저는 '딱 적절한 시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은 2018년 출간되자마자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또 다른 계기가 있었는데, 바이에른 방송국을 비롯한 여러 방송국에서 제게 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난민 위기‘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질문했을 때였습니다. 이때 레클람(Reclam) 출판사를 통해 <우리 난민들(Wir Flüchtlinge)>이라는 원고를 재출간했습니다. 이 책 역시 당시의 화두와 시의적절하게 맞아떨어지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죠.
그 후 저는 아렌트의 전기를 집필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고, 참고 문헌들의 상태가 매우 열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파이퍼(Piper) 출판사와 함께 그녀의 독일어 원고들을 12권으로 묶은 전집을 출간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아렌트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문제를 다룬 두 편의 글을 13번째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해 있는 문제들과도 관련 있어 보이네요. 이런 내용은 앞서 언급하신 이 원고들에만 담겨 있나요, 아니면 아렌트의 사상 전반에 담겨 있나요?
저는 어떤 문제에 부딪히자마자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하며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부류의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책들 외에도 1955년 독일어로 처음 출간된 <전체주의의 기원(Elemente und Ursprünge totaler Herrschaft)>을 읽어보면,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전복되면서 전체주의 체제로 가는 과정에 내재된 위험성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길들여지도록‘ 하는지, 그리고 이렇게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이 어떻게 갑자기 급진화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아렌트는 이러한 점에서 여전히 매우 예리한 관찰자입니다.
아렌트는 단순히 재앙에 대해서만 생각한 사상가가 아니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젤렌스키, 트럼프, 그리고 유럽 정상들 간에 여러 차례 회담이 열렸는데, 지금 아렌트가 있었다면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 지 상상해 보십시오. 현재 모든 것이 모호한 채, 의향서들만 난무할 뿐입니다. 하지만 아렌트는 의향서 작성만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권리와 의무를 부담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구속력 있는 계약의 형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렌트는 매우 법률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교수님께서 집필하신 아렌트 전기는 주로 아렌트가 프랑스와 미국에서 보낸 시절, 특히 1930년대와 1940년대 유대인으로서 망명 생활을 했던 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아렌트는 정치에 참여했고, 100명이 넘는 유대인 아이들의 탈출을 도왔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이러한 측면을 다룬 연구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첫째, 철학자나 정치 이론가들은 기록 보관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위대한 사상가였던 한나 아렌트는 세계의 굵직한 문제들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아이들을 위해 점심을 차려주고, 사람들에게 비자를 구해주려고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또한 그녀가 미국에서 프리랜서 작가로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수년간 생활했다는 사실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위대한 한나 아렌트를 이야기할 때, 이러한 모든 측면들은 저절로 간과되었습니다.
경험에서 비롯되지 않는 사고는 없다.
저는 아렌트가 말한 ‘경험에서 비롯되지 않는 사고는 없다‘는 문장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아렌트가 프랑스에 있을 때, 그녀는 여권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런 권리도 없고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법적 지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그녀는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난민들에게 끊임없이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 전체주의의 기원>에 나오는 '권리를 가질 권리'에 관한 유명한 장은 이러한 경험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렌트가 유대인 난민 단체에서 일했나요?
정확히는 파리에서요. 미국에서는 유대인 문화재건협회(Jewish Cultural Reconstruction, Inc.)에서 일했는데, 이 단체는 유대인 문화 유물과 도서관을 재건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10년 더 일하며 고위직까지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 직책으로 1949년에 처음으로 유럽을 다시 방문했고, 1950년 초에는 독일을 방문했습니다.
그녀 자신도 오랫동안 망명 생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그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1964년 10월 귄터 가우스와의 전설적인 TV대담에서였습니다.
편지 내용을 보면, 심지어 그녀의 친구들조차도 그녀가 살아온 특정 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가우스에게 이야기할 때는 마치 무슨 모험담처럼 "우리는 아이들을 돌보고 비자를 받아주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라고 말했죠.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한 후속 연구를 아무도 진행하지 않았나요?
엘리자베스 영-브륄(Elisabeth Young-Bruehl)이 첫 번째 전기에서 몇 가지를 언급하긴 했습니다. 중도에 연구를 포기해버린 학자들도 몇몇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저 역시 예루살렘으로 이끌었던 단서를 한 아카이브에서 우연히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아무것도 찾지 못했을 겁니다. 그곳에서 친구와 함께 그 문서들을 찾아냈고, 내년에 출간할 예정입니다. 거기에는 편지와 서류, 보고서, 명단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의 건강 상태와 같은 정보가 담긴 목록과 전보도 여러 장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에서의 상황에 대한 절박한 기록들도 담겨 있습니다.
가우스와의 유명한 TV대담에 대해 다시 질문해보겠습니다. 글에 쓰신 대로 지금도 ‘컬트(cult)‘로 여겨지는 인터뷰인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문 평론가들의 반응부터 열광적이었으니까요. 그전까지는 독일 텔레비전에서 유대인 여성이 그처럼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자신감 넘치게, 그리고 명확하게, 그러면서도 객관적인 어조로 이야기한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 점을 즉시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이 인터뷰는 수차례 그림메(Grimme)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렌트의 목소리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책에서 ‘아렌트 특유의 목소리‘라고 언급하셨죠. 거기다 담배를 피우는 지성인으로서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도 한 몫 했을 겁니다. 당시에는 남성에게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었으니까요.
네, 바로 그겁니다. 아렌트는 매우 주체적인 신여성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이러한 그녀의 모습이 사람들을 매료시키기도 하고, 동시에 불편하게 만들었다고도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아렌트의 가장 중요한 저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아렌트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입문서로는 어떤 책을 추천하시겠습니까?
아렌트의 가장 중요한 저서는 여전히 < 전체주의의 기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책을 아무에게나 추천할 수는 없겠죠. 저희가 출간한 판본은 1,000페이지가 넘습니다. 처음 접하는 분이시라면 저는 아렌트가 라헬 파른하겐(Rahel Varnhagen)에 관하여 쓴 책을 추천합니다. 아마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일 겁니다. 낭만주의 시대 독일 유대인 여성의 삶을 다룬 책이죠. 그 외에도, 저희가 출간한 강연과 에세이 모음집에는 전문가를 위한 글들도 있지만, <우리는 난민>처럼 정치에서 거짓과 진실의 문제를 다루는 글들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나 아렌트는 두 가지 모두를 제공합니다. 매우 심오한 학술 논문도 있지만, 50년, 60년 전 아렌트가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흥미로운 일반적인 정치적 문제들을 다룬,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글들도 있습니다.
인터뷰: 위르겐 모이세스(Jürgen Moises), 토마스 마이어(Thomas Meyer)
영어 번역: 수 피켓(Sue Pickett)
한국어 번역: 조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