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판단력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모든 확실성이 무너져버렸다면, 어떻게 새로운 세계와 정치에 대한 이해를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던졌던 한나 아렌트의 지성적 급진주의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다. 이번 칼럼은 우리를 여전히 스스로 생각하도록 이끄는 사상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내면에 다양한 개성이 많을수록, 스스로 진리를 발견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삶
1906년 하노버 근교의 린덴에서 태어난 그녀는 계몽주의의 영향이 여전히 남아 있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한때 ‘도덕적 문제는 자명했다‘고 말했다. 일찍이 베를린으로 이주한 그녀는 마르틴 하이데거와 카를 야스퍼스의 제자가 되어 근대성의 지적 각성을 경험했다. 1927년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을 ‘여지없이 동화되어버렸다‘라고 표현했지만, 나치 정권의 등장과 반유대주의의 확산으로 아렌트는 자신의 유대인 혈통과 시오니즘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1933년 파리로 피신한 그녀는 1940년 독일의 침공 이후 투옥되었다. 같은 해, 미국의 난민 지원 덕분에 그녀는 두 번째 남편인 하인리히 블뤼허와 함께 뉴욕으로 탈출했고, 그곳에서 1975년 사망할 때까지 헌신적이고 논쟁적인 정치 이론가로 활동하며 플라톤, 메리 맥카시, 바뤼흐 스피노자, 임마누엘 칸트, 프란츠 카프카, 카를 야스퍼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에밀리 디킨슨 등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그녀의 저서들은 모두 1933년, 그리고 더 나아가 1941년 이후에 집단학살수용소에서 일어난 일들을 사람들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시체 제조‘의 ‘완전한 무의미함‘, 즉 ‘사고의 범주와 판단 기준의 붕괴‘를 목격한 그녀에게 세계는 국가 사회주의 치하에서 오직 생존자들만이 존재하는 텅 빈 공간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그녀는 언젠가 이들이 교환됨으로써 세계가 재건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녀의 첫 번째 주요 저서인 <전체주의의 기원>은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역사적 분석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데올로기와 테러의 전체주의적인 효과, 그리고 집단학살수용소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렌트는 극단적 악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전체주의 정권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그들의 노력‘ 속에서 극단적 악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들은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해간 광신도들과 가학적인 자들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살인하라‘로 왜곡했던 이들이었다.
활동적
그때부터 자유의 수호는 그녀의 작품을 규정짓는 핵심 주제가 되었다. 1956년,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정치적 행위의 자유에 대한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녀는 인간이 필요에 의해 노동하고, 생산 과정에서 영속적인 생산물을 만들어내지만, 단순히 노동하는 동물이나 수공업자, 자연적 또는 역사적 법칙을 구현하는 존재 그 이상이며, 진보의 주체 그 이상이라고 썼다. 자유롭고 협력적인 행동 속에서 구체화되는 이 ‘더 큰‘ 존재는, 특히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의 지배력이 커지는 상황에 맞서 되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아렌트는 근대 초부터 ‘그림자 같은 존재‘로 전락했던 열정이 다시금 공적 생활과 행위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따라서 그녀의 저서가 ‘행복 추구‘뿐 아니라 고통의 ‘세계 상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고통과 괴로움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은 너무나 자주 우리의 목소리를 빼앗아 가고, 그로 인해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단절시키기 때문이다.아렌트는 혁명에 대한 연구, 아이히만 보고서, 그리고 1960년대에 발표한 정치 저서들, 예를 들어 <권력과 폭력>이나 <정치에서의 거짓말>에서도 자유의 수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예루살렘에서 열린 재판에서 아이히만을 만난 경험은 그녀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성실하다고 내세우며, 대량 학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단지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뿐이라고 정당화하는 모습은 아렌트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신념, 명예,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까?
자유를 갈망하고 독자적인 판단을 내리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하나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주변 환경의 사회적 압력이다. 하지만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만나면서 생겨난 궁금증은 바로 이것이었다. 신념, 명예, 인간의 존엄성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정치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철회
나치즘 치하에서 사실의 토대가 붕괴되어 버린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아렌트는 지식과 시가 지닌 변혁적인 힘에 끊임없이 의지했다. 그녀는 릴케의 시 <밖에 머문 비둘기>에서 ‘철회를 통해 자유로워지고 / 그 능력을 기뻐한다‘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이 구절은 핵심을 찌른다. 말하고 행동하는 능력은 ‘철회‘의 가능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말과 주고받는 말 속에서,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공 영역을 창조하고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그녀의 목소리는 지금도, 그리고 아마 미래에도 도처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그녀의 저서는 그녀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그녀가 한때 ‘불확실하고 끊임없이 모험적인 역사의 길‘이라고 불렀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그녀의 글은 동유럽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시민사회 운동에 불을 지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자유, 책임, 그리고 ‘공적 영역에 나서는 용기‘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어디든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저자: Marie Luise Knott
영어 번역: Sue Pickett
한국어 번역: Yesl 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