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향한 질문:
백남준을 새롭게 발견하다
간단한 소개와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남희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올해는 백남준 서거 20주기가 되는 해인 만큼,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백남준을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백남준. 그는 누구이며, 왜 20세기 미술사의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는지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백남준이라는 이름은 많은 분들에게 익숙할 것입니다. 그는 ‘예술가’, ‘과학자’, ‘개발자’, ‘괴짜’ 등 다양한 수식어로 불리는 천재적인 예술가입니다.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6년 마이애미에서 작고하기까지 한국과 일본, 독일, 미국을 거치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미디어 아티스트입니다.
휘트니 미술관에 설치된 〈실제 물고기 생방송 물고기〉 앞에 서 있는 백남준, 1982. 폴 게린 컬렉션. 백남준아트센터 아카이브.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 © 백남준아트센터
이후 백남준은 텔레비전의 기능을 끊임없이 실험하며 그 가능성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를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도구로 바꾸고자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개발했으며, 영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하고 변형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1964년에는 직접 제작한 로봇과 함께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인간과 기계가 함께하는 새로운 예술의 장을 개척했습니다.
백남준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특징은 미디어를 통해 세계를 연결한 예술가였다는 점입니다. 1984년 발표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뉴욕과 파리를 비롯한 여러 지역을 위성으로 연결한 국제 생방송 프로젝트입니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예술가들이 하나의 무대에서 공연하고 소통함으로써, 기술을 통해 예술과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작품은 미술사를 넘어 세계가 소통하는 방식을 새롭게 제시한 문화사적 사건으로도 평가받습니다.
백남준의 너무나 중요한 작품들이 저희 미술관 소장이라 기쁩니다. 소장품 283점과 비디오 아카이브 2285점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작품 가운데 백남준이라는 예술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작품 중 하나는 1965년에 제작된 《달은 가장 오래된 TV》입니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 © 백남준아트센터
특히 화면 속 달은 실제 달을 촬영한 영상이 아닙니다. 브라운관 텔레비전의 전자빔을 자기장으로 변형해 만들어낸 이미지로, 자연의 변화를 전자와 물리적 조작을 통해 새롭게 구현한 결과입니다. 초승달에서 보름달, 다시 기우는 달에 이르는 순환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히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을 새로운 방식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이 작품이 중요한 이유는 백남준의 제작 방식과 사유가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전자기술이라는 현대적 매체와 동양의 순환적 시간관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으며, 바로 그 지점에서 백남준 예술의 핵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저희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표 소장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두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TV Fish》입니다. 이 작품은 백남준 특유의 유머와 놀이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백남준은 예술이 반드시 엄숙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관람객에게 흥미와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TV Fish》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 ©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빛에 따라 끊임없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듯, 미술관 역시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TV Fish》는 이러한 그의 철학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저희 센터의 대표 소장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징기스칸의 복권》(1993)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대표작을 넘어, 백남준이라는 예술가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미술관의 소장품이기도 하며,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에서 한스 하케(Hans Haacke)와 함께 출품되어 독일관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할 당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징기스칸의 복권》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 © 백남준아트센터
흥미로운 점은, 동양인이었던 백남준이 오히려 서양인인 존 케이지를 통해 선(禪) 사상과 동양 철학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이 경험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이후 그는 스스로를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cultural terrorist)'라고 부를 만큼 기존 서구 중심의 예술 질서에 도전하는 작업을 이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백남준이 주목한 인물이 바로 징기스칸이었습니다. 그에게 징기스칸은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문명과 문화를 연결한 존재를 상징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징기스칸의 복권》은 징기스칸을 통해 백남준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한 자화상이자, 문화적 경계를 자유롭게 횡단하는 그의 예술 철학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을 보면 징기스칸은 자동차를 타고 질주하고 있습니다.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몸 안에는 모니터가 들어 있으며, 뒤편에는 수많은 이미지와 기호를 가득 싣고 있습니다. 이는 백남준이 1974년 제안한 '전자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 개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미디어 기술이 국경과 문화를 넘어 전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할 것이라고 예견했는데, 《징기스칸의 복권》은 그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백남준 자신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TV Buddha》(1974)입니다. 백남준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얼핏 보면 매우 명상적이고 고요한 작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관람객의 참여를 통해 끊임없이 의미가 확장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1974년 제작된 이 작품은 이후 스테델릭 미술관에 소장되며 백남준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작품은 아주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불상이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고, 텔레비전 옆에 설치된 카메라가 불상을 실시간으로 촬영해 화면으로 다시 송출합니다. 이 영상은 끝없이 순환하며 하나의 루프(loop)를 만들어 냅니다.
흥미로운 점은 관람객이 작품 앞에 서는 순간입니다. 관람객의 모습 역시 화면에 함께 비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불상과 같은 시선 안에 놓이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불상을 바라보는 관람객인 동시에 화면 속 또 다른 존재가 됩니다.
《TV Buddha》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 © 백남준아트센터
그래서 《TV Buddha》는 단순히 텔레비전과 불상을 결합한 작품이 아니라, 기술과 인간, 예술과 종교, 관객과 작품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게 만드는 백남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백남준아트센터 컬렉션 가운데 가장 소중한 작품 중 하나이며, 백남준이라는 예술가를 가장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백남준 작가는 텔레비전, 비디오, 신디사이저, 그리고 로봇 등 다양한 기계를 작품 주요 매체로 활용했는데 그 중에서도 핵심은 TV였습니다. 당시 예술 매체로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TV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글쎄요. 백남준이 텔레비전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가장 강력한 대중 매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서로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창구였습니다. 특히 텔레비전은 이미지와 사운드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매체였기 때문에, 백남준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새로운 예술 재료로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백남준의 관심은 단순히 텔레비전의 기술적 매력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왜 텔레비전은 항상 일방적으로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왜 화면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가, 왜 텔레비전과 상호작용할 수는 없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은 기존 방송 시스템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새로운 소통 방식을 제안하려는 실험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관심은 사실 전자음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백남준은 독일에서 전자음악을 공부하며 전자 기술이 예술의 표현 방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탐구했고, 그 관심은 자연스럽게 전자매체 전반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텔레비전은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실험 가능성이 큰 매체였고, 전자음악에서 시작된 그의 실험을 시각예술로 확장시키는 핵심 도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관장님께서는 한 인터뷰에서 AI 시대에 백남준은 이미 예언자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이 표현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그 표현은 사실 제가 처음 만들어낸 해석이라기보다, 2019년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열린 백남준 회고전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 관점입니다. 당시 전시와 함께 공개된 자료와 영상에서는 백남준이 오늘날의 디지털 사회를 여러 측면에서 예견한 예술가였다는 점을 정리해 소개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을 보며 저 역시 "정말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인터뷰에서 그 관점을 인용하며 말씀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74년 백남준이 제안한 '전자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 개념입니다. 당시에는 인터넷은 물론,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된다는 상상조차 쉽지 않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백남준은 전자 매체를 통해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정보와 문화가 자유롭게 오가는 미래를 이야기했습니다. 이후 1989년 월드와이드웹(WWW)이 제안되고 1990년대를 거치며 인터넷이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백남준이 그렸던 비전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전자초고속도로'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를 놀라울 정도로 앞서 내다본 선구적인 통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오늘날의 글로벌 미디어 환경을 내다보았다는 점입니다. 백남준은 언젠가는 세계 어느 곳의 텔레비전 채널이든 자유롭게 선택해 볼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전 세계의 이미지와 문화가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미래를 상상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유튜브와 SNS를 통해 누구나 자신의 채널을 만들고,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미디어 채널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생산된 콘텐츠가 국경을 넘어 즉시 공유되는 지금의 환경은 백남준이 내다본 ‘글로벌 미디어 시대’가 현실이 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번째로 백남준이 이야기한 것 가운데 저희에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오는 부분 중 하나는 환경 문제에 대한 통찰입니다. 1967년 무렵에 쓴 글에서 이런 취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과학자들도 놓친 것을 히피는 알고 있다." 그가 말한 것은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환경 문제를 놓치고 있었지만, 히피들은 자연의 변화와 환경의 위기를 더 민감하게 감지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 이야기는 예술가의 존재와 역할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등장합니다. 인간은 결국 자연과 공존해야 하는 존재인데, 그 관계를 잃어가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이미 제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에는 오일쇼크를 비롯해 자원과 자본을 둘러싼 세계적인 위기들이 이어졌고, 이러한 문제는 점점 더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류세(Anthropocene)나 자본세(Capitalocene)와 같은 개념을 통해 인간의 활동과 자본 중심의 산업 구조가 지구 환경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백남준이 1960년대에 던졌던 자연과 기술,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은 지금 우리의 시대와도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 역시 백남준이 미래를 선구적으로 내다본 중요한 통찰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스마트폰입니다. 백남준은 언젠가 하나의 단말기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기기로 쇼핑을 하고, 건강을 관리하고, 일상적인 소통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기기로 전화는 물론 인터넷, 쇼핑, 금융, 건강관리, 소통까지 모두 해결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백남준이 이야기했던 다섯 가지 미래는 오늘날 대부분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백남준이 상상했던 미래' 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백남준 작가를 처음 접하는 관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 문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백남준에 관해서는 할 이야기도 많고, 그가 남긴 말과 글에도 수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떠오른 백남준의 말로 대신 답해 보겠습니다.
“예술은 무엇일까요? 달인가요, 아니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까요?”백남준이 던진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의 예술을 바라보다 보면 예술과 기술, 예술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무엇이 먼저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백남준은 그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달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도,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인간도 모두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백남준의 예술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예술입니다. 그 질문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기보다는 유쾌하게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백남준아트센터 외관 | © 백남준아트센터
독일어 번역: 레슬리 클라테(Leslie Klatte)
영어 번역: Star Korea 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