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뒤에 가려진 노동
박아름빛 작가와의 인터뷰

박아름빛 © 박아름빛

죽음과 신, 윤리에 관한 질문에 AI는 어떻게 답을 배우게 될까요? 그리고 폭탄 제조법이나 혐오 표현처럼 AI가 걸러내야 할 기준은 누가 만들고 가르칠까요? 우리는 종종 AI를 스스로 사고하는 존재처럼 바라보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노동이 존재합니다. 우연히 AI 트레이너 일을 제안받게 된 박아름빛 작가는 누군가는 AI에게 인간다움뿐 아니라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세계까지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작업은 이러한 숨겨진 노동을 드러내며 기술과 윤리, 그리고 인간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와 현재 집중하고 있는 작업 전반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베를린에서 거주하며 작업하는 박아름빛입니다. 인터뷰, 설문조사, 넷노그래피(Netnography)* 등 다각적인 리서치를 통해 동시대를 둘러싼 다양한 현상과 이야기를 모아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AI트레이너라는 직업군을 중심으로 고도화된 현대 기술과 시스템이 개인의 노동, 삶의 감각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탐구하고 있습니다. 영상 매체를 중심으로 텍스트, 오브제, 드로잉,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시도하는 중입니다.

*넷노그래피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임, 소셜 미디어 등 온라인 디지털 공간을 리서치 필드로 삼아 이 안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행동, 상호작용, 문화 등을 관찰, 분석하는 방법론입니다. 

개인전 《AI 트레이너 김 씨의 삶》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함께, 왜 “AI 자체”보다 “AI 뒤에 존재하는 인간”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저는 작업을 하며 통번역일을 겸하고 있습니다. 한 에이전시로부터 호주 기반 회사로부터 `AI트레이너`라는 일이 들어왔는데, 관심이 있냐며 샘플테스트를 제게 보냈어요. 이 메일을 받기 전, 친한 친구로부터 이 일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는데요. 공부하면서 도서관에서 짬짬히 일하기 좋다는 말을 당시에 남겼습니다. 샘플테스트 엑셀 파일을 열었는데, 그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었던 게 기억납니다. 다양한 프롬프트와 레이팅, 수정 예시가 빼곡히 써있는데, 대부분 내용이 폭력적이고 잔인했습니다. 그 때 처음 AI에게 누군가는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세계를 입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렇게 무수한 훈련과 데이터셋을 통해 AI가 안전해진다면, 과연 그는 어떤 윤리를 따르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해당 프로젝트는 비록 성사되지 않았지만, 이를 계기로 AI트레이너라는 직업군에 관심이 생겨 이런 저런 리서치를 하며 상상과 함께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결국엔 1인칭 소설과 리서치 북이 혼합된 형식으로 마무리 되었어요. 개인전 《AI 트레이너 김 씨의 삶》에서 전시했던 책입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본격적인 리서치에 돌입했습니다.

“주어진 조건에 맞춰 어떤 상황이나 짧은 이야기를 만들기. 그 조건은 성적 수위가 아주 높아야 한다거나, 폭력적이거나, 윤리성에 어긋나는 경우일 수도 있다. 가능한 모든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려가며 타자기를 치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끔찍했다. 상상 가능한 가장 두려운 상황들을 밖으로 끄집어 내야 한다니. 그것을 흐릿한 이미지나 감정이 아니라, 완결된 글, 형태를 갖춘 이야기로 만든다. 프롬프트 예시들을 모두 읽어보니, 이 일은 현재 아.주. 끔찍한 단계에 놓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직은 할만한 수준이고, 언젠가 인공지능이 더 진화한다면, 그 때엔 더 교묘하게 끔찍한 질문들을 만들어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직업에 흥미를 느끼며 한국어로 ´AI 트레이너´를 검색했다. 꽤 많은 알바자리들이 보였는데, 대부분 시간당 4만원에서 7만원 수준이며 모집 공고들은 다 마감이었다. 스크롤을 하니 한 AI트레이너 전문가 교수에 대한 기사가 보였다.”
<에이아이 트레이너 김 씨의 삶> 중 발췌
What Would Bread Say Right Before Being Eaten By Butter?

What Would Bread Say Right Before Being Eaten By Butter? | © Areumbit Park

많은 사람들이 AI 산업을 개발자나 엔지니어 중심으로 상상합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AI 트레이너’라는 존재에 주목하셨습니다. 왜 ‘개발자’가 아니라 ‘트레이너’였나요? 그들이 오늘날 AI 시스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이 일은 제게도 왔고, 제 친구도 하는 일입니다. 개발자와 엔지니어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모두 이 일에 합류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그게 AI가 가진 특성과 직결되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복제하고 흡수하는 점이요. 종교, 사회과학, 자연과학, 언어, 심지어 국적 등 각자 가진 특성, 지식과 능력을 통해 다양한 태스크에 동원됩니다.

AI트레이닝을 들여다보면 그 내용과 종류가 방대합니다. 단순 라벨링이나 자전거 수리법부터 고도의 전문 지식까지, 태스크의 종류에 따라 시급도 2유로에서 50유로까지 천차만별입니다. 제가 리서치 필드로 삼았던 레딧의 AI 트레이닝 커뮤니티에는 이 일을 열렬히 환영하는 글들과 비소 섞인 글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무수하고 다양해서 결국 '일반적인 유저'의 모습으로 수렴됩니다. 수많은 개인이 참여하지만, 이들은 각자의 개성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집합체로 묶이는 듯합니다. AI 트레이너는 특수한 지식을 가진 '누군가'가 아니라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점에서, AI의 본질과 현 시대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속에서는 AI 트레이너가 죽음, 신, 윤리 같은 질문에 반복적으로 응답하면서 자신의 신념까지 흔들리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실제 인터뷰 과정에서 가장 오래 남았던 말이나 장면이 있었나요?
트레이너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할 때 가장 답변하기 어려웠던 프롬프트라는 질문이 마지막에 있었어요. 트레이너들은 [질문-답] 한 쌍을 만들기도 하고, 주어진 질문에 답변만 생성할 때도 있는데요. 이 질문에 대한 다양한 답변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과거의 나를 위한 추도사를 써줘.”
“할아버지를 잃은 다섯 살 아이에게 죽음을 설명해줘.”
“조력사를 선택한 사람의 작별 편지를 써 줘.”
“인류의 가장 큰 결함을 외계 종족에게 설명하는 편지를 써줘.”
"신은 누구인가요?”

통계에 따르면 사람들이 AI를 심리상담에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해요. AI가 내놓는 말끔한 대답이 수많은 인간 검수자들을 통해 조정된 결과물이라 상기할 때면, 3초만에 튀어나오는 답변이 문득 생경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AI Trainer Kim's Life Exhibition

AI Trainer Kim's Life Exhibition | © Areumbit Park

우리는 ChatGPT 같은 시스템을 흔히 ‘자동화’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그 뒤에 엄청난 인간 노동이 존재합니다. 특히 AI 산업 안에서 감정 노동은 어떤 방식으로 숨겨지거나 비가시화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구조적으로는 하청, 아웃소싱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인터뷰한 대부분의 트레이너들은 본인들이 일을 구하는 플랫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이 일이 어떤 회사에서 내려온 일인지 모릅니다. 노동자는 큰 맥락을 보지 못한 채, 아주 잘게 쪼개진 데이터만을 처리합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시스템의 주체가 아닌, 알고리즘의 부품으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청의 하청 구조는 노동 환경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쉽고, 노동자가 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태스크를 하는 동안에는 노동 시간이 초단위까지 기록되고요, 태스크하는 동안 데스크탑 안에서 눈동자의 움직임을 감시 당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최종사용자에게 전달되는 것은 정제된, 중립적인 말끔한 대답이기 때문에 그 모든 과정은 비가시화됩니다.
What Would Bread Say Right Before Being Eaten By Butter?

What Would Bread Say Right Before Being Eaten By Butter? | © Areumbit Park

AI는 점점 더 인간처럼 말하고 감정을 흉내 내는데, 반대로 인간은 점점 더 기계처럼 반응하도록 요구받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작가님은 이러한 관계의 역전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우리가 만든 도구에 따라 효율성과 매끄러움이 삶의 새로운 기준이 된 것 같습니다. 이러한 관계의 역전이 아직은 과도기로 느껴집니다. 낯설고 두렵다는 생각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과도기를 지나면 결국 우리가 현재 당연히 사용하고 있는 기술들처럼 큰 차이가 없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새로운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그에 맞춰 스스로를 최적화하고, 측정 가능한 존재로 변모하며 질서를 수용해 왔으니까요.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시계에 맞춰 일상을 분절하고, 숫자로 성과를 증명하는 기계적 질서에 길들여져 왔습니다. 시계가 있는 삶이 당연해진 현재의 일상처럼, 과거에 어떠했는지 언젠가는 잊어버리게 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환희와 공포를 잘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작가님의 작업을 보며, AI가 미래 기술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과거의 성 역할이나 권력 구조를 반복·강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데이터 편향과 AI의 비중립성 문제를 예술의 언어로 다루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술은 결국 감각적인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전달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방법론이 사회과학의 그것과 닮아 있을지라도, 저는 통계 수치나 논리적인 글로 결과물을 내놓지 않고, 이를 다시 이야기로 엮고, 시청각적 매체를 사용합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이해하는 방식은 다양한데, 예술은 그 중 한가지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영상 「나쁜 것을 말해줄게」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왜 “나쁜 것”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하셨나요? 또한 플랫폼과 알고리즘은 왜 점점 더 강한 감정을 요구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나쁜 것을 말해줄게」(Tell You Something Bad)는 제가 클로드 RLHF(인간 피드백을 통한 강화학습) 데이터에서 찾았던 한 프롬프트 쌍에서 시작했습니다. 한 유저가 내게 나쁜 것을 말해줘 tell me something bad 라고 답한 데에 승인된/거절된 답변 쌍을 찾을 수 있는데요.
 
이 영상은 레드팀(Red Teaming) 훈련, 즉 나쁜 질문만 던져야하는 사람들에 관한 영상입니다. 폭탄 제조법, 혐오 표현 유도, 가스라이팅 등 온갖 방식으로 AI의 보안망을 뚫어야 합니다. 이에 AI가 어디에 취약한지 확인하고, 그에 대한 모범답안(거절답변)을 데이터 세트로 만드는 훈련이에요. 스크리닝 장소가 아르코예술극장이었는데, 극장의 대형 스크린을 트레이너의 태스크 화면처럼 보여주려 했어요. 관객들이 스스로 선택을 고려하며 시청할 수 있게요.

플랫폼과 알고리즘은 결국 가치 중립적이지 않고, 이익을 찾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유저가 가능한한 오래 플랫폼에 남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우리가 가진 모든 데이터가 이익창출이 가능한 자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인간은 자극적인 것에 쉽게 반응하고, 그렇게 내놓은 반응의 결과값이 다시 알고리즘에 종속됩니다. 우리가 알고리즘 환경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더불어 오늘날 “진짜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AI 산업 전반에 대해 꽤나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작업에 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저는 이 리얼리티는 보여주는 데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저 또한 한 유저고, 제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구글과 메타에 팔려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악순환의 고리를 과연 끊을 수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연을 자주 마주치고, 이를 잘 관찰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재밌게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최근에 자주 했습니다. 걷다가 우연히 보게 된 대자보, 우연히 듣게 된 얘기,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의 근황 등이요.

한국에서는 AI가 주로 속도와 효율의 언어로 이야기됩니다. 하지만 작가님의 작업은 오히려 멈춰 서서 인간의 감정과 책임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AI 담론 안에서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예술은 균열을 내는데 효과적인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AI가 생성하는 이미지가 매끈한, 표준적인, 이상적인, 전형적인, 파시즘적인 것이라면 예술은 그 반대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술은 참 비효율적입니다. 최소한 제가 하는 예술이요.

결국 작가님의 작업은 “기술이 인간을 어떻게 재구성하는가”라는 질문으로도 읽혔습니다. 앞으로 AI 시대에 예술이 가장 중요하게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결국엔 인간에 관한, 인간사, 인간성에 대한 질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오는 5월 30일, 아트센터예술의시간에서 아티스트 프롤로그 2026 선정작가 개인전 <코끼리의 이는 보여도 씹는 건 보이지 않는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프로젝트가 AI트레이너들의 윤리적, 종교적 갈등이라는 개인적 차원을 조명했다면, 이번 전시는 시야를 넓혀 AI산업 구조와 노동 환경, 그리고 데이터가 생성되는 환경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저와 비슷하고, 또 다른 포지션을 가진 4명의 작가분들과 함께 6월 9일 주한독일문화원에서 스크리닝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간되면 들러주세요. 감사합니다.
프로젝트 기획 및 인터뷰: 신소희
편집: 레슬리 클라테(Leslie Klatte)
독일어 및 영어 번역: 레슬리 클라테(Leslie Kla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