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드러내다: 김승환이 말하는 퀴어 정체성과 가족의 인정

오스카 수상자 윤여정 배우가 아들의 동성 혼에 대해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보수적인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김승환 프로그래머는 퀴어의 가시성과 가족의 수용, 그리고 공개 결혼식이 수많은 정치적 논쟁보다 더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김승환 © private

오스카 수상자이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대표 배우 윤여정 님이 최근 아들의 동성혼을 공개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짧지만 진심이 담긴 이 고백은, 여전히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보기 드문 부모 세대의 지지 표현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그녀의 담담한 한마디는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한국 사회 변화의 흐름을 상징하는 영화 같은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오늘은 한국 최대 퀴어 영화제인 ‘서울 국제 프라이드 영화제’의 프로그래머이자, 사단법인 ‘신나는 센터’에서 활동 중인 김승환 님을 만나, 지금 한국 사회에서 퀴어 문화는 어디쯤 와 있는지 이야기 나눠봅니다.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프로그래머는 한국에서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올린 첫 동성 부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되었나요?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소수자 인권 단체인 ‘친구사이’였습니다. 제가 처음 참여했을 당시만 해도 회원 수가 많지 않아서, 선배들이 많은 것을 직접 가르쳐 주셨습니다. 특히 ‘챠밍스쿨’이라는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아요. 성소수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부터 시작해서 역사 교육, 성교육, 그리고 해외의 다양한 사례까지 알려주는 아주 실질적인 배움의 공간이었거든요. 그때 제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참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이후 2008년, 시카고로 교환학생(전자학과)을 가게 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운 좋게도 당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던 시기였는데, 시카고를 중심으로 일리노이주의 도심 지역에서는 대학가와 여러 시민단체들이 활발하게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LGBT 센터도 운영되고 있었고, 다양한 교류 및 지원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미국의 다른 도시들뿐만 아니라 유럽에 있는 여러 LGBT 센터들도 찾아가 보았고, 그 과정에서 성소수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점점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죠.

한국으로 돌아온 뒤, 평소 관심이 많던 영화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남편인 김조광수 대표님께서는 당시 ‘청년필름[1] ’을 운영하고 계셨고, 저는 그곳에서 기획, 제작, 홍보, 배급 등 다양한 업무를 맡게 되면서 만났습니다. 사실 데이트를 조금이라도 빨리 하고 싶어서 전단지도 열심히 나눠주고, 어떻게든 회사 일에 보탬이 되려 노력했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함께하며, 저 역시 성소수자 인권 활동에 더욱 마음을 쏟게 되었습니다.

사실 영화계 언론에서는 이미 저희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숨기고 싶지도, 숨길 이유도 없었어요. 다만 저는 처음에는 ‘공개 결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결혼이 단지 저희 둘만의 일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올리면, 우리 사회 안에서 동성 결혼과 파트너십의 제도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용기를 냈고, 결국 많은 분들의 축하 속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이 참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승환과 남편 © private

공개 결혼 이후, 삶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저희가 결혼을 공개적으로 하기로 결심했을 당시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동성 결혼’이라는 주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홍석천 형과 같은 유명인이 커밍아웃하며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성소수자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죠. 심지어 성소수자들 사이에서도 동성 결혼은 시기상조라는 인식이 강했고, 그것이 평등권인지 자유권인지조차 구분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희가 공개 결혼을 선택하면서, 많은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그 결혼을 계기로 뜻이 맞는 활동가들이 모여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이 단체는 지금의 ‘혼인평등연대’로 발전했습니다. 그동안 혼인 평등 캠페인을 꾸준히 이어왔고, 특히 오소리-소주 부부가 [1] 대법원으로부터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받은 판결은 상징적인 성과였습니다. 이제는 대선 토론에서조차 동성 결혼이 공식적으로 다뤄지고 있으는데요. 사회적 논의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저희 결혼이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저에게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가족의 변화였습니다. 김조광수 대표님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저희 부모님, 누나, 친척들까지 모두 점차 마음을 열어주셨어요. 커밍아웃은 처음엔 어렵고 두려운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진심은 통했고, 관계는 오히려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변의 성소수자들에게 커밍아웃을 권하고 있어요. 누군가와 거리를 두며 사는 삶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동성 결혼의 법제화와 같은 제도적 변화는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동성 부부인 오소리-소주 부부가 대법원으로부터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받은 판결은 아주 상징적인 변화였습니다. 이는 단지 한 커플의 권리를 인정한 것을 넘어서, 이성 위주의 제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이런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성소수자 외교관이나 주한미군의 동성 배우자에게도 ‘배우자 비자’가 발급되었고, 항공 마일리지 공유나 보험 혜택 등에서도 점점 변화가 감지되고 있죠. 제도 전체가 바뀐 건 아니지만, 기존 시스템의 경직된 틀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겁니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 역시 동성 결혼을 단번에 법제화된 게 아니라, 다양한 파트너십 제도—예를 들어 프랑스의 팍스(PACS)처럼—를 통해 점진적인 변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렇게 균열이 확산되고 제도와 제도가 연결되다가, 결국 동성 결혼이라는 사회적 합의로 이어진 거죠.

그래서 저도 동성 결혼의 법제화는 ‘시간 문제’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시간이 생각보다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아 답답할 때도 있지만, 저는 이 변화가 사회적 공감과 이해를 충분히 동반해야 한다고 봅니다. 단지 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이 실제 삶 속에서 작동하고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어야 하니까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법적으로는 동성 결혼이 합법이지만, 현실에서는 성소수자가 커밍아웃조차 하지 못하죠. 법이 앞서 나가도 사회가 따라오지 못하면 그 법은 결국 종이 위의 선언에 그치고 말아요. 그래서 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우리 사회가 함께 동의하고 지지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나아가는 것이 더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이후, 성소수자들의 권익 증진을 위해 국내 최초로 설립하신 사단법인 ‘신나는 센터’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사실 ‘신나는 센터’를 설립하기 전에도 여러 임의 단체들이 고유 면허증을 가지고 활발하게 성소수자 운동을 해왔습니다. 다만 저희는 거의 유일하게 정부와 협력하며 일을 진행하는 단체입니다. 정부나 기업, 다양한 기관들과 협력하려면 기본적으로 법인격을 갖춰 운영하는 게 필요했고, 이를 통해 재정 투명성도 확보할 수 있었죠. 다시 말해, 사단법인이라는 법인격을 갖는다는 건 국가가 저희 단체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성소수자 단체가 법적으로도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사단법인으로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활동 분야 역시 기존 단체들이 이미 잘해 온 영역을 굳이 또 하려 하기보다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시작되지 않은 부분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문화 예술’ 분야였는데요, 저희가 주최하는 대표 행사로는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와, 뉴욕의 LGBT 엑스포를 벤치마킹해 매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는 ‘프라이드 엑스포’가 있습니다. 매년 5월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에는 ‘프라이드 갈라’와 같은 문화 행사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소수자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만드는 고품질 문화 예술 콘텐츠를 통해, 저희는 두 가지 목표를 이루고자 합니다. 먼저 성소수자 자신에게는 자긍심을 심어주고, 동시에 비성소수자인 시민들에게는 이 주제에 대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좋은 콘텐츠를 향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잘못된 편견과 차별적인 인식을 줄여나가는 게 저희 센터가 추구하는 중요한 방향입니다.
  ‘서울 국제 프라이드 영화제’는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인정받는 중요한 행사인데요, 프로그래머로서 어떤 기준으로 영화를 선정하고, 어떤 활동들을 펼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서울 국제 프라이드 영화제는 2011년에 시작했지만, 초창기에는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정도에 머물렀어요. 그러다 2015년부터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했고, 2019년에는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국제영화제로 승격받으며 규모와 위상이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아시아 다른 지역을 보면, 상황이 조금 어려웠습니다. 도쿄의 프라이드 영화제는 경기 침체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주요 인력들이 도쿄를 떠나면서 축소됐고, 홍콩은 우산혁명 이후 문화 전반에 걸쳐 침체를 겪었습니다. 대만은 외교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영화 제작 수준이 아직 한국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저희 영화제가 자연스럽게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점도 많지만, 많은 분들이 긍정적으로 봐 주셔서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영화 선정 기준은 무엇보다 작품성과 완성도입니다. 아무리 중요한 이야기라도 전달하는 힘이 없으면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죠. 유명 배우나 감독이 참여했는지는 주요 선정 기준이 아니고, 이미 세계 유수 영화제—예를 들면 베를린영화제 같은 곳에서 주목받은 작품들을 엄선해 상영합니다.

잘 만들어지고 유수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작품들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되는데, 그 작품이 퀴어 영화거나 성소수자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그동안 관심이 없던 일반 관객들도 영화를 통해 성소수자의 존재와 인권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작품성’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서울 국제 프라이드 영화제에서는 매년 전 세계에서 온 100편 이상의 퀴어 영화를 상영합니다. 이를 통해 다양한 국가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죠. 이렇게 직접적, 간접적으로 여러 경험을 나누면서 관객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교육적인 의미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국내 퀴어 영화가 다루는 소재나 등장인물의 폭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을 하신 적이 있는데요,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런 부분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퀴어 영화는 주로 학생들의 성장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개인적으로 무척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2022년을 기점으로 퀴어 영화의 주제와 등장인물의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주로 어두운 캐릭터가 많았던 반면, 최근에는 개성 넘치고 톡톡 튀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악역으로도 성소수자 캐릭터가 나오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캐릭터도 한때는 늘씬한 모습으로만 그려졌다면, 이제는 다양한 체형과 모습의 트랜스젠더가 등장하며 현실을 더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스포츠나 다른 다양한 영역에서도 성소수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등, 기존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 매우 기쁩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 영화제인 ‘전주 국제 영화제’가 2020년대에 들어서 꾸준히 퀴어영화를 상영하였고, 작년 2024년에는 한국영화 경쟁부분에 무려 2편이나 퀴어영화를 선발하였는데요. 퀴어 영화제가 아닌 다른 대형 영화제에서도 퀴어 장르에 관심을 기울이고 조명해 준다는 사실은 우리 영화계와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퀴어 영화제가 단순한 영화 축제를 넘어서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여성 영화제가 단순히 여성 영화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며 교육적인 역할까지 확장하는 것처럼, 퀴어 영화제 또한 축제적인 성격을 유지하는 동시에 꾸준히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퀴어 영화제가 더욱 다양하게 늘어나야 한다고 보지만, 현실적으로 영화제로 공식 인정받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규정과 복잡한 요건들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상영회나 기획전 등 다양한 형식의 행사를 활성화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접근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성소수자’라는 개념조차 분명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어요.
김승환
교육적 역할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특히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외로운 길을 걷고 있는 퀴어 청소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요?

사실 제가 어렸을 때는 ‘성소수자’라는 개념조차 분명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남자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또래 문화 정도로만 여겨지며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반면, 요즘 청소년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지만, 그만큼 괴롭힘과 차별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친구들에게 단순히 “우리 행복해, 잘 살 수 있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만 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편의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데요. 첫 번째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남자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러브 사이먼(Love, Simon, 감독 Greg Berlanti, 12세 이상 관람가, 2018)』이고, 두 번째는 아이슬란드의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두 소년이 처음 사랑을 느끼는 과정을 그린 『하트스톤(Heartstone, 감독 Gudmundur Arnar Gudmundsson, 12세 이상 관람가, 2019)』입니다.

『러브 사이먼』이 유쾌하고 밝은 영화라면, 『하트스톤』은 고민과 괴로움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죠. 이런 작품들을 통해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나와 비슷한 사람이 세상에 꽤 많구나,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위로를 얻길 바라며, 동성애자가 아닌 학생들에게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매년 5월 17일 혐오 반대의 날에 열리는 ‘프라이드 갈라’ 행사에는 주한독일문화원의 원장단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는데요. 이 행사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프라이드 영화제’, ‘프라이드 엑스포’, 그리고 ‘프라이드 갈라’ 등 저희가 운영하는 행사들은 해외에서 이미 검증된 포맷을 차용한 것들입니다. 특히 ‘프라이드 갈라’는 뉴욕의 유명 자선 패션 행사인 ‘Met Gala’를 본떠 만들었는데요. 한국 내에서는 LGBTQ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진 (단체나 기관의) 실무자들이 많지만, 이들이 제안한 LGBTQ 관련 행사가 종종 결정권자에게 거절되는 현실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정권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여전히 보수적인 탓에, 성소수자 문제는 여전히 찬반 논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혐오 세력의 반대도 만만치 않아, 결정권자들이 공개적으로 LGBTQ 행사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프라이드 갈라’는 일부러 비공개로 진행하며, 이들이 부담 없이 참석해 행사를 통해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얻도록 돕고자 합니다.

매해 성소수자 인권이나 권리 향상에 기여한 인물이나 단체에게 상을 주기도 합니다. 또한 이들을 축하하는 클래식 콘서트도 열고 있어요. 슈베르트나 헨델처럼 많은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이 성소수자였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미 전 세계가 향유하고 있는 문화예술 콘텐츠 중에도 알고 보면 성소수자들이 만든 뛰어난 작품들이 많다는 사실을 은은하게 알리고 있습니다.

축사는 정치·외교, 종교, 언론 분야에서 각각 한 분씩 모시는데, 외부에서 보면 ‘이런 분이 축사를 한다고?’ 싶을 만큼 의외의 인사들을 초청합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단체나 기관의) 결정권자들의 인식을 조금씩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미 많은 분들이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저희가 모신 중요한 손님들이 ‘프라이드 갈라’에 안전하고 즐겁게 참석하길 바라고, 어렵게 내준 시간을 소중한 기억으로 남길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승환과 남편 II © Cine 21

오늘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일단 저의 남편이자 ‘신나는 센터’의 김조광수 대표님께서 올해 환갑을 맞으셨어요. 이를 계기로 주변을 돌아보니, 많은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노년을 준비하는 시점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이미 시니어 LGBT 센터가 별도로 운영되고 있고, 시니어 성소수자들을 위한 다양한 사회적 보장 제도도 잘 갖춰져 있습니다. 우리 단체도 이제 본격적으로 ‘내 노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해 실질적인 제도를 연구하고 준비하려 합니다. 노후 문제는 전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변화하는 사회 제도 안에 반드시 성소수자의 목소리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부분에 집중한 다양한 운동을 펼칠 계획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업은 ‘HIV 예방제’ 확대입니다. 아직도 ‘동성애는 에이즈, 에이즈는 죽음’이라는 낡은 편견이 혐오 프레임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저는 이런 혐오의 무기를 빼앗는 운동을 하고 싶어요. 코로나 백신처럼 에이즈도 HIV 예방제를 통해 충분히 예방이 가능합니다. 작년 말에 파일럿 시범 사업을 진행했고, 올해부터는 정부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확장되어 시행되고 있습니다. 신규 감염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성소수자를 질병과 연결짓는 낙인과 혐오가 줄어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주한독일문화원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주한대사관과 문화원들이 저희와 함께해 주시는 점이 큰 힘이 되고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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