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와 마법 사이:
박본이 말하는 『The Third War』
100년마다 되풀이되는 전쟁. 작가이자 연출가인 박본은 『The Third War』를 통해 두려움이라는 동시대의 감정을 중심으로 강렬한 판타지 세계를 펼쳐냅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가 전쟁과 정치, 인간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무대로 왜 오페라를 선택했는지 들어봅니다.
먼저 본인 소개와 함께, 지난해 쇼케이스에 이어 올해 SPAF에서 완성된 공연으로 선보이게 된 <세 번째 전쟁 (Der Dritte Krieg)>이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 주세요.
『세 번째 전쟁 (The Third War)』은 일종의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전쟁 오페라입니다. 세 개의 거대한 국가가 100년 만에 세 번째로 대규모 전쟁에 휘말리게 되는데, 이 전쟁은 매번 100년마다 되풀이되는 저주로 인해 일어납니다. 이 저주는 100년마다 이 세계를 덮치고, 아직까지 이를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결국 이 세계는 전쟁을 치러야만 합니다.
음악으로 이야기하기
<세 번째 전쟁>은 오페라 형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특별히 오페라, 혹은 음악극이라는 형식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연극, 예술, 음악은 저에게 감정의 언어입니다. 그중에서도 오페라는 가장 거대한 감정, 즉 카타르시스가 존재하는 곳입니다. 무대 위에서 오페라보다 더 장엄하고 압도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오페라를 잘 모르는 사람인데도 말이죠. 하지만 비전문가인 우리조차 오페라라고 하면 귀와 머릿속에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오래된 유럽의 금빛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공연장, 오케스트라, 연미복, 붉은 벨벳 커튼, 호화로운 의상과 여러 개의 무대 세트, 신성한 노래 같은 것들이죠. 전쟁에는 삶과 죽음, 이 모든 것이 걸려 있고, 이보다 더 실존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오직 오페라만이 이 장르와 주제를 충분한 품위와 무게감으로 담아낼 수 있습니다.
음악에는 굉장히 강력한 조종의 힘이 있습니다. 어떤 장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이미 그 음악을 얼마나 진지하게 혹은 가볍게, 즐겁게 혹은 집중해서 들을 것인지 결정하게 됩니다. 팝은 여가 시간에 듣는 음악이고, 뮤지컬은 비교적 가벼운 무대 장르이며, 클래식 음악은 다리를 꼬고 앉아 자세를 갖추고 집중해서 듣습니다. 오페라는 진지합니다. 특히 전쟁이라는 주제를 다루기에 충분히 진지한 형식이죠.
또한 음악은 우리의 감정을 조종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감정을 밀어 넣지만, 우리는 그것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미학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있어 이것은 아주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러한 음악에 텍스트가 더해지면, 현실의 복잡성과 모호함을 함께 포착할 수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현실은 언제나 복잡하고 다의적이며, 서로 다른 의미와 층위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음악은 슬픈데 텍스트는 유쾌하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러면 우리는 슬프면서 동시에 유쾌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처음에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우리의 문제는 복잡성을 견디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음악과 텍스트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때, 우리는 다시금 모순된 상태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 번째 전쟁>은 전쟁과 정치같은 현실적이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때 음악은 언어나 대사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표현하거나 경험하게 할 수 있을까요?
네, 맞습니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악까지 아름다워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음악은 반드시 아름다워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폭력과 트라우마, 폭격과 고통 같은 것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행히도 전쟁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책이나 화면, 알고리즘을 통해서만 전쟁을 접해왔습니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약20분 동안 이어지는 전투 장면입니다. 하지만 총격전이나 칼로 찌르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발레와 무대 마술, 환상적인 순간들이 등장합니다. 심지어 핵폭탄조차 한 명의 무용수로 표현되며, 이때 무용수가 연기하는 핵폭탄은 부드럽게 춤을 추며 하늘에서 아주 천천히 떨어집니다.
이것은 전쟁을 미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파괴와 아름다움이 공존하며 만들어내는 모순은 우리에게 더욱 아픈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아픈 것이죠. 이런 감정은 말로 온전히 형용할 수 없습니다. 언어만으로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 점이 좋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무대와 예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니까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전달하는 또 하나의 언어로서 말입니다.
사실 그렇게 큰 의미는 없습니다. 다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 더 많은 과정과 시스템이 필요할 뿐입니다.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어로 작곡했고, 오늘날 K-팝 음악의 상당수는 스웨덴 프로듀서들이 만듭니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간단하게 들리지만, 벤은 천재입니다. 음악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런 협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필요한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외부에서 보기에는 언어의 차이가 전혀 장애물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박본의 오페라: 전통과 확장 사이
<삼십억 자매(Drei Milliarden Schwestern)>과 <김나지움(Gymnasium)> 같은 작품을 통해 작가님은 오페라라는 형식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해 왔습니다. 오페라로 계속 돌아오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작가님이 생각하는 ‘오페라’는 전통적인 오페라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저에게 오페라는 거대하고 장엄하면서도 무겁고 느린 무대 장르입니다. 가장 거대한 감정을 담아내는 형식이죠. 저는 언제나 감정에 관심이 있습니다.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은 배우의 것이 아니라 관객의 것이어야 합니다. 배우가 극한까지 감정을 표현하며 자신이 배역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주장하는 방식은 관객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관객이 아닌 배우 자신을 위한 경우가 많고, 그런 연기는 대개 금세 간파되기도 합니다. 감정은 연출가의 것도, 작가의 것도, 작곡가의 것도 아닙니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 연극이든 오페라든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언제나 관객의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관객의 입맛에 맞춰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작품은 관객의 감정을 흔들고, 또 이러한 감정을 선사하는 동시에 때로는 강제로 느끼게까지 해야합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음악이고, 오페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엄격한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오페라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기보단,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감정적 경험을 만들기 위해 오페라를 활용합니다. 저는 저 자신을 예술과 현실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자라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모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가장 이상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습니다. 반드시 좋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백 년 된 장르 역시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엄함, 화려함, 오케스트라, 성악, 진중함, 아름다움, 카타르시스 같은 좋은 요소들은 남겨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들은 덜어냅니다. 지나치게 긴 공연 시간, 오늘날의 집중 방식과 맞지 않는 오래된 이야기들, 형식과 규칙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태도, 작품을 너무 어렵고 무겁게만 다루려는 분위기 같은 것들입니다.
저는 오페라를 배신하거나 오페라에 도전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페라가 계속해서 생명력을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오페라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예술이며, 오페라가 박물관 속 유물이 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오늘날에도 오페라라고 하면 흔히 클래식 음악, 오케스트라, 전문 성악가를 떠올립니다. 당신의 작품에서는 팝과 일상문화, 다양한 언어적 요소가 자연스럽게 사용됩니다. 연출가님에게 ‘오페라’라는 개념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나요? 오페라라고 부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있을까요?
개념을 정의하고 장르를 두고 논쟁하는 일은 제 몫이 아닙니다. 그것은 관객의 몫이고, 사실 오히려 학문의 영역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예술가들은 어떤 작품이 실내극인지, 팝아트인지, 컨템퍼러리 댄스인지, 혹은 오페라인지에 대해 그리 많이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만들 뿐이죠. 그것을 평가하고 분류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장르를 넘나드는 작업과 독일 연극계
연출가님의 장르 융합적 작업 방식은 개인적인 예술적 관심뿐 아니라 독일의 연극 환경과 제작 시스템의 영향도 받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독일의 연극 시스템에는 예술가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도록 해주는 특별한 구조나 조건이 있나요?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다른 나라들의 연극 시스템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꼭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연극과 음악은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니까요.
오히려 벤과 제가 하는 작업은 독일 연극 시스템의 산물이 아니라 매우 독특한 사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런 작업을 추진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기존의 구조를 강하게 흔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극장이나 제작 기관의 강한 의지 역시 필요합니다.
한국 관객에게
마지막으로 <세 번째 전쟁>을 만나게 될 한국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이 어떤 질문이나 생각, 혹은 감정을 가지고 돌아가기를 바라시나요?<세 번째 전쟁>은 지금 가장 유행하는 감정이 ‘두려움’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모든 것이 양극화된 세계에서 두려움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는 감정입니다.
저는 거기에 어떤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합의하는 일은 거의 없고, 오히려 서로를 거부하는 일이 많아진 시대이니까요. 하지만 극장 안에서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 안에 함께 앉아 경험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분명 슬프고 무겁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름답고 화려하며, 매혹적이고,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두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치 일종의 엑소시즘처럼 오페라가 가진 힘을 통해 그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우리 모두가 조금은 덜 두려워진 채 극장을 나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프로젝트 기획 및 인터뷰: 신소희
한국어 번역: 김지연
영어 번역: 에릭 로젠크란츠(Eric Rosencran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