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하는 합창》:
2026 부산비엔날레에서 만난 박현성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천과 금속, 호스, 빛과 물 등 다양한 재료를 통해 신체와 외부 세계가 관계 맺는 방식을 탐구하는 시각예술가 박현성입니다. 독일 뮌헨에서 10년간 공부하고 작업한 뒤, 현재는 부산을 기반으로 여러 도시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성질을 지닌 재료들을 연결해 매달리고, 눌리고, 늘어지거나 미세하게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의존과 자율, 보호와 노출처럼 상반된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순간을 탐구합니다.
저는 처음 뮌헨 조형예술대학교 조소과(Bildhauerei)에 입학했고, 약 2년 뒤 회화·그래픽과(Grafik und Malerei)로 옮겼습니다. 당시 학교는 도제식 교육의 성격이 강해 학과가 작업의 매체를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저 역시 조형을 중심으로 드로잉과 퍼포먼스 등 여러 매체를 자유롭게 오갔고, 지금도 매체를 먼저 정하기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에 따라 필요한 재료와 형식을 선택합니다. 최근 워터펌프나 아두이노 같은 기술을 사용하게 된 것도 물의 흐름이나 호흡하듯 빛나는 움직임을 구현하려다 자연스럽게 작업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초기에는 사물의 ‘역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학교에서 처음 만든 작업은 신발이 더러운 바닥을 밟으면서 동시에 사람의 몸무게를 받아낸다는 사실에서 출발한 〈보이지 않는 역할과 보이는 역할〉(2014)이었습니다. 이후에는 사람의 몸을 지탱하고 신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의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를 통해 인간과 사물이 어떤 역할을 맡고 관계를 맺는지를 탐구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의자를 다루면서 하나의 대상에 작업이 갇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커피에 담긴 쿠키가 물렁해지고 검게 물드는 모습을 보고, 여러 종류의 종이를 잉크를 푼 물에 담가보기 시작했습니다. 재료마다 액체를 흡수하고 휘거나 찢어지는 방식이 달랐고, 이를 계기로 관심이 이름과 기능이 분명한 사물에서 재료의 물성과 외부의 힘에 의해 일어나는 변화로 옮겨갔습니다.
이때부터 신체와 피부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제 작업에서 안전과 불안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라기보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안전한 것을 찾는 이유 자체가 그것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에서 출발하고,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가 분명해질수록 상실의 가능성 역시 선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천으로 비교적 직접적인 신체의 형태를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피부나 장기 같은 신체적 감각만 남기고 동물과 식물, 기계의 일부가 뒤섞인 듯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작업이 조각인지 패션 오브제인지, 장신구인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상태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작업이 옷처럼 보이는 것을 경계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여러 장르가 겹쳐 보이는 모호함을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최근 펜던트 작업에서는 천의 주름을 촘촘하게 모으고 호스를 반복해서 땋거나 금속 부속을 연결하면서 응축과 밀도, 장력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에 빛과 물, 사운드 등을 결합해 여러 오브제가 서로 연결되는 공간 설치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지금은 인간의 신체를 직접 재현하기보다 신체적인 감각을 지니면서도 동물인지 식물인지 기계인지 명확하게 부를 수 없는 혼성적인 존재가 어디까지 변화할 수 있을지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모든 작품이 소중하시겠지만, 아직 작가님을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꼭 소개하고 싶은 대표작 세 점을 선정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각각의 작품이 작가님의 작업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함께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그네타기〉(2018)입니다. 뮌헨의 한 갤러리 쇼윈도 안에 직접 만든 그네를 설치하고, 그네를 타며 투명한 유리창에 무릎을 반복해서 부딪치는 퍼포먼스였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유리라는 경계에 부딪혀 다시 뒤로 밀려나는 움직임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에는 제가 유리를 공격하는 것인지 오히려 제 몸이 그 과정에서 상하고 있는 것인지 모호해집니다.
실제로 퍼포먼스 이후 무릎에 후유증이 오래 남아 결국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작업이 되었습니다. 한동안은 영상을 보는 것조차 힘들었고, 제가 선택한 작업이 또 다른 불안을 만들어낸 셈이었죠.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 내린 결론은 그때 꼭 해야 했던 퍼포먼스였다는 것입니다. 몇 년 뒤 다시 신체를 소재로 작업하면서 이 작품이 지금의 작업까지 이어주는 하나의 다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그 영상을 보면 무릎이 저릿저릿합니다.
두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소화하는 경계〉(2024–2025)입니다. 신체 일부를 연상시키는 천 조각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고, 그 사이를 투명한 호스가 연결하며 그 안으로 물과 기포가 계속 순환하는 설치 작업입니다. 각각의 조각은 독립된 몸처럼 보이면서도 물의 흐름을 통해 서로 연결된 하나의 구조를 이룹니다.
처음으로 워터펌프를 사용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물과 기포가 순환하기 시작하자 정지된 조각 안에 체액이 흐르거나 무언가를 소화하는 듯한 내부의 시간과 생명감이 생겼습니다. 이후 제 작업에 빛과 공기, 움직임 같은 동적인 요소가 들어오게 된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천으로 된 조각들은 스스로 설 수 없어 와이어에 의존해 매달려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공중에서 자신의 형태를 유지합니다. 작품 속 의료 장치 역시 신체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외부의 도움을 통해 몸을 유지하고 회복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 통해 취약함과 의존, 그리고 외부의 힘을 받아 살아가는 일이 서로 분리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소화하는 경계〉는 피부와 내부, 순환과 의존 등 제가 신체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본격적으로 조각과 설치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동시에 조각이 고정된 형태에 머무르지 않고, 그 안에서 실제로 무언가가 흐르고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우리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한〉(2026)입니다. 이 작업부터 인간의 신체를 직접적으로 닮은 형태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손이나 몸통, 피부와 장기처럼 신체를 떠올릴 수 있는 단서가 분명했다면, 이 작품에서는 그것들이 뒤섞이고 변형되면서 인간인지 동물인지, 식물인지 기계인지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혼성적인 형태가 나타났습니다.
As Long as We Look at the Night Sky (2026) | © Hyunsung Park
초기 작업에서는 의자와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공간과 신체의 관계를 탐구하셨다면, 최근에는 신체를 연상시키는 설치 작업으로 작업의 무게중심이 이동한 듯합니다. 특히 Breathing Bones 시리즈를 기점으로 주제와 형식 모두 큰 변화가 느껴지는데요. 최근 작업인 Breathing Bones와 Digesting Boundaries를 비롯해 신체, 피부, 경계와 같은 주제가 꾸준히 등장합니다. 작가님이 연구중인 주제의 핵심을 설명해 주시겠어요?
〈Breathing Bones〉는 신체에 대한 생각을 본격적으로 조각으로 풀어가기 시작한 작업입니다. 연약한 망사천 안에 금속 구조를 넣어 안쪽에서 밀어내며, 하나의 몸이 성장하듯 조금씩 형태를 만들어갔습니다. 망사는 금속에 의지해야 형태를 유지할 수 있지만, 금속이 조금만 더 팽창하면 오히려 찢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서로에게 기대어 존재하면서도 그 힘이 지나치면 관계가 무너질 수 있는, 찢어지기 직전의 긴장된 상태를 작업의 완성으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연약함은 제작뿐 아니라 운송과 설치 과정에서도 이어집니다. 작은 마찰에도 망사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위험을 계속 예상하고 대비해야 해요. 먼 곳에서 전시할 때는 여분의 망사를 만들어 가져가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불안해하고, 가능한 상황을 상상하고, 대비책을 마련한 뒤 다시 안심하는 과정까지도 작업의 일부입니다.
이후 이 작업들을 모아 2024년 개인전 《나는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모른다 / I Don’t Know How to Fill》를 열었습니다. 전시장 중앙의 링거대에서 여러 조각이 뻗어나가도록 설치하면서 신체의 ‘의존성’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링거는 몸의 취약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외부로부터 무언가를 공급받아 몸을 유지하고 회복시키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인간의 신체를 변형하는 데서 더 나아가, 피부와 장기, 호흡과 순환 같은 신체적 감각을 지니면서도 동물이나 식물, 해양생물, 기계의 특징이 뒤섞인 새로운 혼성적 존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형태는 달라지고 있지만, 결국 제가 계속 탐구하는 것은 하나의 존재가 무엇에 기대어 자신을 유지하고, 또 어떤 순간에 위태로워지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주제의 전환뿐 아니라 최근 작품에서는 천, 망사, PVC 호스, 스테인리스 구조물 등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재료들이 팽팽한 긴장감을 이루며 하나의 신체처럼 작동합니다. 이러한 재료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시며, 각각의 물성이 작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재료를 선택할 때는 먼저 힘을 받았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봅니다. 당겼을 때 늘어나는지, 접히거나 주름지는지, 무게를 버티는지, 빛을 투과하거나 반사하는지를 직접 만지고 변형하며 살펴봅니다. 동시에 견고한 것과 연약한 것, 유연한 것과 단단한 것처럼 서로 다른 성질의 재료가 만났을 때 생기는 관계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망사천은 저에게 피부와 가까운 재료입니다. 얇고 연약하지만 크게 늘어날 수 있고, 당기고 조이는 방식에 따라 강한 장력과 밀도가 생깁니다. 또한 반투명하기 때문에 안과 밖을 나누면서도 완전히 차단하지 않습니다. 이런 성질이 제가 생각하는 피부라는 경계의 상태와 닮아 있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형태를 지탱하는 골격에 가깝습니다. 매우 단단하지만 날카로운 모서리가 망사를 찢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샌딩해야 합니다. 단단한 재료가 연약한 재료와 함께 존재하기 위해 자신의 성질을 조정하는 과정인 셈이죠. 눈에 잘 드러나지 않고 지루한 공정이지만, 작은 부분 하나를 놓치면 전체 작업이 손상될 수 있어 오히려 가장 세심하게 다루는 부분입니다.
PVC 호스는 물과 공기가 이동하며 서로 다른 지점을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최근에는 여러 가닥의 호스를 머리카락처럼 반복해서 땋거나 천을 주름 잡고 압착하면서 힘을 작은 공간 안에 응축시키는 방식에 관심이 많습니다. 완성된 형태는 고요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다시 풀리고 벌어지려는 힘이 남아 있어요. 저는 이렇게 정지된 형태 안에 운동과 에너지가 잠재된 상태에 관심이 있습니다.
빛과 물, 사운드는 정적인 조각에 움직임과 리듬을 더합니다. 빛이 천천히 밝아지고 어두워지거나 호스 안에서 물과 기포가 순환하면서 구조가 마치 호흡하거나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보통 제작의 마지막 단계에 더해지기 때문에 저에게도 작업에 마지막으로 숨을 불어넣는 과정처럼 느껴집니다.
다만 각각의 재료를 특정 신체 기관과 일대일로 대응시키지는 않습니다. 금속은 뼈, 호스는 혈관이라고 정하기보다 재료들이 서로 기대고, 밀고, 버티는 관계 속에서 전체가 하나의 몸처럼 느껴지는 순간에 관심이 있습니다. 익숙한 재료들이 관계를 맺으며 어느 순간 낯선 생명성을 갖게 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독일 뮌헨 조형예술대학교에서 Peter Kogler 교수의 마이스터슐러 과정을 마치셨습니다. 독일에서의 유학 경험은 현재의 작업 세계에 어떤 영향을 남겼나요? 특히 독일 미술교육을 통해 몸에 밴 태도나 작업 방식 가운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제가 경험한 독일의 미술교육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높은 자율성이었습니다. 제가 학교에 다니던 당시에는 정해진 과제를 주거나 작업의 속도를 관리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고, 주어진 시간을 얼마든지 나태하게 보낼 수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그런 환경이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정말 작업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매일 스스로 선택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작업 중 어떤 문제에 막혀 있을 때면 페터 코글러 교수님은 그 고민과 연결되는 작가들의 작업을 보여주곤 하셨습니다. 의자를 계속 다루던 시기에는 브루스 나우먼을, 이후 천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는 프란츠 에르하르트 발터의 작업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두 작가는 지금까지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교수님은 제가 가야 할 방향을 정해주기보다, 제가 하고 있는 행위가 미술 안에서 어떤 맥락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스스로 발견하도록 여러 개의 문을 열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결국 독일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작업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아무도 대신 선택해 주지 않는 환경에서 계속 작업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정답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질문하고 방향을 찾아가는 방식을 배웠습니다.
독일에서 다양한 장학금과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경험하셨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단순히 경력을 쌓는 것을 넘어 작가님의 작업 방식이나 예술가로서의 태도를 변화시킨 계기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레지던시에서 만난 사람들, 새로운 환경, 작업 과정 등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자세히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장학금과 지원금이 작업을 지속할 시간과 현실적인 여건을 마련해주었다면, 레지던시에서는 낯선 환경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잠시 그곳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본 경험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오스트리아 죠빙(Zöbing)과 독일 칼베(Kalbe)에서의 시간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죠빙에는 2019년 졸업전시에서 제 작업을 본 작가 부부 프란츠와 에바의 초대로 머물게 되었습니다. 두 분은 자신들이 사는 건물 1층에서 작은 갤러리와 레지던시인 Sommergalerie Zöbing을 운영하며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죠빙은 해가 지면 고양이의 발소리와 바람에 풀이 스치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조용한 마을이었습니다. 저는 작업에 쓸 재료를 찾으러 포도밭 사이를 걷고, 버려진 목재나 오래된 울타리 조각처럼 평소라면 지나쳤을 것들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사못 하나를 사기 위해 자전거로 30분을 가야 할 만큼 모든 것이 느린 곳이었고, 그곳에서는 작업뿐 아니라 그 생활의 속도에 몸을 맞추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두 분과는 지금까지도 편지와 드로잉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제가 독일을 떠난다고 했을 때도 특별한 작별 인사 대신 그저 우편물을 보낼 새 주소를 물으셨어요. 마치 옆 동네로 이사하는 것처럼요. 그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실제 거리는 훨씬 멀어졌지만 관계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예술을 매개로 맺어진 관계에서는 국경이나 물리적인 거리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8년에 머물렀던 독일 칼베의 Künstlerstadt Kalbe는 또 다른 방식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휴대전화 신호도 거의 잡히지 않고, 장을 보려면 차로 30분 이상 나가야 하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요일마다 정육점이나 베이커리 트럭이 마을을 찾아왔고, 주민들은 아침이면 빵이나 갓 낳은 계란을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밤에는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워 눈 위에 반사되는 달빛에 의지해 산책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평소라면 사소했을 일들이 하루의 중요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레지던시는 단순히 새로운 장소에서 작품을 만드는 기간이 아니라, 잠시 그곳의 시간을 실제로 살아보는 경험입니다. 익숙한 작업실과 재료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몸을 맞추다 보면 평소에는 지나쳤을 것을 보게 되고,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작업 안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레지던시에서 발견한 우연한 형태나 방법들이 이후 작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서 하는 레지던시를 좋아합니다. 평소에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에서, 작가라는 이유로 일정 기간 그곳의 삶과 환경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큰 특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부산비엔날레의 주제는 ‘Dissident Chorus(불협하는 합창)’입니다. 서로 다른 존재와 목소리가 함께 만들어내는 ‘합창’을 작가님은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이러한 주제가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과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이번 전시를 계기로 앞으로 확장해보고 싶은 작업에 대해서도 들려주세요.
저는 ‘Dissident Chorus’를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각자의 차이를 유지하면서도 함께 관계를 맺고 하나의 공명장을 만들어가는 상태로 이해했습니다. 이번 작업에서도 각각의 조각은 고유한 형태와 긴장을 유지하지만, 물과 빛, 소리가 만드는 흐름과 리듬을 통해 서로 연결됩니다.
이번 부산비엔날레에서는 옛 부산남고등학교 급식실에 장소 특정적 설치 〈우리는 차가운 물속에 있는 것처럼 떨고 있었지〉를 선보입니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한때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공급하며 활발하게 작동했던 공간에 낡은 배관과 기능을 잃은 설비만 남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급식실을 시간 속에 멈춘 신체의 내부이자 활동을 멈춘 거대한 대사 기관처럼 느꼈고, 영도 앞바다의 깊은 물속을 연상시키는 차가운 ‘푸른 암실’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동시에 이곳이 한때 많은 노동이 집중되던 장소였다는 점에도 주목했습니다. 여러 가닥의 호스를 오랜 시간 반복해 땋고, 천을 주름 잡고 압착하면서 재료 안에 힘과 시간을 응축했습니다. 과거 이곳에 존재했던 노동과 같은 종류는 아니지만, 사라진 노동의 리듬 위에 제 몸의 리듬을 겹쳐놓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간에는 조여지고 압착된 조각과 몸의 파편처럼 보이는 펜던트들이 매달려 있습니다. 각각은 떨어져 있지만 호스 안의 물이 계속 순환하고 빛이 규칙적으로 밝아졌다 어두워지면서 공간 전체에 호흡이나 맥박 같은 리듬을 만듭니다. 버려진 급식실에 다시 물과 빛, 소리와 미세한 움직임을 불어넣는 것은 저에게 일종의 애도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기능을 복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때 이곳을 채웠던 움직임과 에너지가 잠시 다시 감지되기를 바랐습니다.
혼자 작업하다 보면 저만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 외부와 단절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번 협업을 통해 혼자서는 만들 수 없었던 하나의 새로운 목소리가 작업 안으로 들어왔고, 제 작업과 바깥세상을 연결하는 또 다른 통로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이번 작업을 계기로 개별적인 조각을 넘어 빛과 물, 사운드, 움직임, 그리고 장소 자체가 서로 관계를 맺는 설치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 장소의 구조와 빛, 남아 있는 흔적과 분위기에 따라 작업이 변화하는 장소 특정적 작업이 흥미로웠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공간 설치를 발전시키면서, 이번에 본격적으로 시도한 사운드 협업 역시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프로젝트 기획 및 인터뷰: 신소희
독일어 번역: 레슬리 클라테(Leslie Klatte)
영어 번역: STAR Korea 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