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몬 대백과: 외부 유출본» 추수 작가와의 인터뷰
어렸을 때부터 엄마이자 풀타임 예술가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커리어를 시작하자마자 그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보살핌을 요구하는 존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죠.
오늘 우리는 개인전 «아가몬 대백과: 외부 유출본»(2025, MMCA)을 출발점으로, 추수 작가의 과거 여정을 따라 그녀만의 독창적 세계관을 탐험합니다.
모성의 재구성
아가몬’은 오르가즘의 순간 탄생하는 몬스터이자, 한국어 아가(발음: Agar/뜻: Baby)’와 영어 우뭇가사리(발음: Agar/뜻: Agar)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존재로 알고 있습니다. 흔히 준생명체라고 표현되는데, 작가님께서는 생명체를 어떻게 정의하시며, 아가몬은 그 정의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한다고 보시나요?아가몬은 몸을 이루는 우뭇가사리와, 그 위에 생착하여 자라는 이끼가 함께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생명체입니다. 몸은 썩어 형태가 무너져도, 그 위의 이끼는 계속해서 자라납니다. 그렇다면 몸이 사라진다고 해서 아가몬이 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Louisa Buck은 “부패는 재탄생의 한 형태이기에, 긍정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몸이 썩는 동안 박테리아가 번식하고, 득실대는 박테리아 덩어리에서도 이끼는 포자를 퍼뜨리며 다시 번식합니다. 아가몬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품은 존재인 셈입니다.
Schroedingers Baby, 2019/2020, The Galerie Stadt Sindelfingen | © TZUSOO
Exhibition at MMCA Seoul Box X LG OLED, TZUSOO, 2025 | © MMCA
Agarmon #5, 2025 | © TZUSOO
행간에 알려진 바와 같이, 모성애를 대리 만족하고자 아가몬을 만든 것이 아니라 아가몬을 돌보느라 바쁜 날들을 보내며 아기를 낳고 싶은 욕구를 잊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귀엽게 태어났어요. 또 얼마나 민감한지. 습도와 조명을 계속해서 신경 쓰고 돌보며 정이 들어요.
유일하게 사멸한 아가몬 2호가 죽었을 때, 독일에서 사진을 받아보고는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죠. 아버지가 국사봉에 묻어주신 것도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돌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술관 큐레이터들도 부패해 가는 아가몬을 보며 "가엾다"라고 하는 걸 보면, 어떤 애정이 형성되는 특유한 존재인가 봅니다. 그러나 아가몬의 죽음을 가족과의 이별 사례와 견줄 수는 없죠. 가당치 않은 이야기입니다.
‘GAN’과 ‘TAE’라는 “Spirits”를 통해 성(sexuality)의 다양한 양상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 시스 규범성, 동성애, 여성성, 그리고 질병.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으신가요? 혹은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탐구되길 바라나요?
다양하길 바라요. ‘야하다’는 무궁무진한 단어가 말도 안 되게 작은 범주로 통용되죠. 저는 어떤 포르노도 야하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그래서 찾아 나서는 겁니다. 나한테 야한 건 뭘까? 여성에게 야하다는 건 뭘까? 엄청나게 다양한 ‘야’ 중 한 꼭지가 되길 바라며.
The Eight Spirits of Flesh-TAE & GAN, 2025 | © TZUSOO
The Eight Spirits of Flesh-GAN 02, 2025 | © TZUSOO
The Eight Spirits of Flesh-TAE 01, 2025 | © TZUSOO
공간과 장소성
특히 출산율 저하가 사회적 문제로 크게 논의되는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이번 작품의 장소성은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시나요?한국 사회가 근 10년간 겪어 온 일련의 사건들을 여러 차원에서 드러내는 설치가 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다난한 심사 과정에서도 선정이 되었고, 많은 관객들에게도 공감 어린 사랑을 받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긴 시간을 혼자 걸어온 것처럼 느끼지만, ‘서울박스’라는 심장 같은 장소성이 어떤 의미가 있긴 하겠죠.
“MMCA × LG OLED 시리즈는 매년 전문가의 추천과 심사를 거쳐 한 명의 작가를 선정, 서울관 ‘서울박스’의 공간적 특성을 반영한 신작을 선보인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번 전시장을 지금과 같이 구성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포털’을 만들어 놓고 관객을 초대한 겁니다. 게임 같아요. 모든 면이 열려 있고, 높이가 13m나 되는 서울박스는 작가에게 도전적인 공간이에요. 그곳에 포털을 지어 사람들을 잠깐 다른 세계로 유혹하는 거죠. 그 포털을 통해 아가몬과 정령들도 소환되었고요.
《아가몬》 작품 속 시스 규범성, 노골적인 에로티시즘과 성 표현에 지금까지 어떤 반응들을 받으셨나요? 독일과 한국에서의 반응에 차이가 있었다면, 그것이 작품의 의미를 새롭게 하거나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나요?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이라고 느끼신 건 지극히 인터뷰어님의 감상이에요. 모두 다르게 반응합니다. 귀엽다, 징그럽다, 포근하다. 우려와는 달리 아이들도 좋아해요. 그들에게는 포켓몬, 디지몬 같은 작품인 거죠. 양효실 비평가는 담배를 태우며 “너무 야해서 못 보겠어.”라 하셨죠. 감상이 독일과 한국으로 나뉜다기보다는 개별자로 나뉘는 듯합니다.
Exhibition at MMCA Seoul Box X LG OLED, TZUSOO, 2025 | © MMCA
창의성의 미래
한 인터뷰에서 ‘이번 전시에서는 미래에 미술관의 수많은 스크린을 장악할 AI와 맞서 싸워볼 생각이다. (중략) AI는 내가 가진 수많은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작가님 작업에서는 실제로 직접 손이 닿은 공정에서만 느껴지는 독특한 생동감이 있는데요. 지금은 AI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이 만든 것’에 관람자가 더 끌리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관점에서 창의성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고 계시나요?반가운 질문이네요. AI랑 맞서 싸운다고 그냥 인터뷰를 해버렸죠. 예술에는 승패가 없는 건데, 이상하게 ‘아직 내 손은 못 따라온다’는 승부욕이 있었어요. 그래 놓고는 6개월간 신작을 쏟아내고 전시 준비를 마쳐야 했으니 8K 해상도의 영상 두 편을 손으로 빚는 지옥을 제 손으로 판 셈이죠.
뭐가 다르다곤 못 해요. 그런데 끊임없이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며 알게 된 점은, 손이 많이 간 데를 사람들이 귀신같이 좋아한단 말이죠. 약간 사이비 종교같이 들릴지라도 ‘내가 정을 쏟으면 그 정의 기운이 전해지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면 전시장의 인큐베이터도 직접 디자인했는데요, 거기에 달린 여덟 개의 하트 피어싱에 정말 많은 시간을 쏟았거든요. 말 그대로 손이 많이 갔어요. 독특한 모양도 아니고 심플해서 누가 알아줄까 했는데, 사람들이 눈을 못 떼는 걸 보면 ‘역시 뭔가 있다’ 싶어요. (안 좋은 점은 만지면 안 되는데, 너무들 만지심…)
지금 AI는 지겨워요. 2022년도에는 흥미로웠는데, “달리의 에이미” 이후로 AI들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미지를 학습해버렸어요. 그래서 오히려 덜 창의적이라 요새는 AI로 아무것도 안 합니다.
Exhibition at MMCA Seoul Box X LG OLED, TZUSOO, 2025 | © MMCA
설치 때 매일매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서울박스가 눈앞에 펼쳐지면, 꼭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고민하는 박덕선 큐레이터님이 보였어요. ‘저 사람은 이 설치가 예쁘게 나오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할까?’ 분명 직업적으로 주어진 책임 이상의 열정이었어요. 나는 작가라지만…
결국에는요, 이 전시를 위해 애쓰는 수많은 사람들의 최종 목적은 아름다운 전시를 탄생시키는 거예요. 황홀하지 않나요? 여기에는 아무도 돈 많이 번 사람이 없어요. 저는 재정적으로만 보면 마이너스 비즈니스를 했고요. 그런데 왜 할까? 예술이 좋으니까. 제 자신에 대한 발견은 아니지만,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감탄, 동료애에 푹 젖어 있던 여름이에요.
슈투트가르트, 독일
현재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학에서 초빙 교수로 일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독일 철학에 매료되어 독일로 건너갔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철학에 매료되었는지, 현재 아가몬까지 이어지며 여성성 작품에는 어떤 철학이 영향을 끼쳤는지도 궁금합니다.한 사람의 철학이 아니라 독일 근현대 철학 흐름의 성정이 저랑 잘 맞아요. 직설적이고 군더더기 없고. 지금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이나 하만(Johann Georg Hamann)의 투고 형식 비평들을 읽어 보면, 정돈된 어조로 하는 피 튀기는 싸움에 흥분을 감출 수 없게 됩니다. 그 시대의 쇼미더머니 랩 배틀 같은 건데, 주제는 예술과 철학에 관한 거잖아요. 와우… 너무 부러워요. 저도 하고 싶어요.
작품들을 직접적으로 서포트해 주는 철학을 나열할 수는 없죠. 지극히 제 사적인 이야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이들이고. 그런데 결국 많은 책들이 제 삶을 빚은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연결고리들이 산재하죠. 희한하게도 독일 출신의 미학자들 -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등 - 이 많아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오스트리아 사람임을 알려드립니다.)
독일에서의 생활과 예술 교육 환경이 작품의 주제와 형식, 미적 사유에 어떤 구체적 영향을 미쳤나요?
글쎄요, 한국에서 전시하면 독일스럽다고 하고, 독일에서 하면 한국스럽다 하고, 미국에서는 “에이미는 동양인 외모인데 영어가 왜 독일 악센트냐" 하니, 이래저래 섞인 모양입니다.
<나는 이곳을 졸업하는 것이 부끄럽다, I’M ASHAMED TO HAVE GRADUATED HERE>(2022)는 슈투트가르트 미술대학 졸업작품으로, 비 EU 학생들에게 부과되는 학기 등록금 정책을 비판하는 작품입니다. 작가님은 1,500유로 등록금을 주제로 옥외 광고판과 판매 프로젝트를 통해 불평등을 드러냈으며, 작가님이 투영된 캐릭터 ‘에이미, Aimy’를 통해 독일에서의 예술 학습 경험과 제도적 문제를 시각화했는데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겠어요? 작품을 받아들이는 독일 시민, 학생, 교수 등 각 집단이 보여준 반응은 어땠나요?
많은 논란이 있었죠. “네가 한국에서 공부하면 내야 하는 등록금과 비교해 봐라.”는 교수님도 있었고, “중국인들이 독일 대학에서 공짜로 공부하고 돌아가 미사일을 만든다."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크게 우는 아기가 더 많은 우유를 얻는다.”, “당사자가 낼 소리를 빼앗는다."라는 다른 학생들의 댓글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사실 등록금 면제 학생이었거든요. 당사자가 아니라는 거죠. 연대에 당사자성을 따지는 것은 클래식한 소음이죠. 저는 등록금이 면제되기 전 입학했을 때부터 이 문제에 대해 반대하는 작업들을 해왔습니다.
졸업하기 1년 전부터 이미 베를린으로 떠나 있었고, 졸업할 때쯤 학교로 돌아가니 고작 몇 년이 흘렀다고 아무도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거예요. ‘이대로 학교를 행복하게 떠날 수는 없다.’는 생각이 기도에 턱 얹혀 이 작품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제5년의 학업을 함께해 온 친구들이 소매를 걷어붙였습니다. 레베카 오글(Rebecca Ogle)이 설치 기획을 맡았고, 예술가 플로리안 지거트(Florian Siegert), 샤오통 허(Shaotong He), 요하네스 슈톨(Johannes Hugo Stoll), 박선하가 설치를 도왔죠. 모나 바마이어(Mona Barmeier)는 시청에 설치 허가를 받아내기 위한 모든 행정을 맡았습니다. 여기에 바덴뷔르템베르크 미술협회(Baden-Württemberg Kunstverein e.V.)의 한스 D. 크리스트(Hans D. Christ) 관장님이 비공식적으로 파이프를 자르고 구조물을 제작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고 이런저런 조언을 주었죠.
I_M ASHAMED TO HAVE GRADUATED HERE, 2022 | © TZUSOO
여담으로는 졸업식에서 졸업생들 기념 촬영을 하는데 혼자 펑펑 울었어요. 저는 학교와 아카데미를 끔찍이 사랑하거든요. 떠나기 싫었어요. 다들 웃었죠. 작품도 울고 너도 울고, 퍼포먼스냐. 돌아보면 어려웠지만 참 나다운 졸업이었다 싶습니다.
작가, 추수
사진에 보면 넥타이를 자주 매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의도된 패션인가요?쇼핑도 싫어하고 아침마다 옷 고르기도 싫어요. 그냥 흰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예의를 갖춥니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는데, 2024년 12월 3일은 작가님의 생일이기도 하고, 국현으로부터 최종 3인 후보 선정 이메일을 받은 날이며, 동시에 지난 정부의 계엄이 발표된 날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박근혜 정부 탄핵 시위 당시 여성 혐오를 상징하는 ‘생수통’을 들고 물을 나눠주는 퍼포먼스 <성수통>(2016)도 인상 깊었습니다. 작가로서 정치적 시선을 어디쯤 두고 계시나요?
모든 삶의 장면은 정치적입니다. 국회나 정당 정치 같은 제도 정치만이 정치적인 게 아니죠. 제 예술은 내 생각과 감정과 어떤 마음속 동요를 표현하는 수단이고, 그 주제는 하루하루의 삶입니다. 제 모든 사적인 장면에는 내 시선이 있고, 그것에 솔직합니다. 박근혜 정부 탄핵 시위 때도 시위에 참여하다가 ‘아녀자’, ‘암탉 소리가 담을 넘으면 집안이 망한다’ 등의 혐오 표현들이 난무하는 광경을 목도하고는, 그 집단의 완전한 한 패가 될 수는 없었던 거죠. 사람을 사랑하는 기준이 있을 뿐이지, 어떤 정치적 기제를 저변에 두고 살지는 않아요.
The Holy Water Bottle, 2016 | © TZUSOO
우리 모두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요.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정신을 핸드폰과 노트북, 컴퓨터 안에 넣어 살고 있나요. 디지털 세계에서는 젠더가 무슨 소용이며, 생명과 죽음도 없죠. 그런데 우리는 아직 몸에 살잖아요. 몸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젠더와 생명, 죽음은 여전히 아주 큰일로 남아 있죠. 이 커다란 모순의 세계를 하루에도 수백 번 오가며 살아가는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CV를 보면
아기를 가질 계획
2026?
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알려주세요.
아기를 갖고 싶은데, 가질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내 24시간을 갈아 넣어 지탱하는 작업의 발전과 팀 추수의 월급, 경영, 빠듯한 생활비가 동시에 무너지는 일이에요. 이 이야기를 어제도 술 마시며 친구들에게 한탄했습니다. 전시에서도 그렇고 참 여러 사람에게 징징대고 있네요. 들어주어 고맙습니다.
인터뷰 | 신소희, 주한독일문화원 온라인 홍보 매니저
독일어 번역 | 알렉산드라 로트예(Alexanra Lottje)
영어 번역 | 에릭 로젠크란츠(Eric Rosencran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