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제적 예술가 사샤 포레(Sascha Pohle)와의 인터뷰
먼저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물질과 공간, 그리고 문화 속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바탕으로 작업합니다. 제 작업은 서로 다른 배경과 의미를 지닌 사물과 이미지들이 만나 관계를 이루는 데서 출발합니다. 직접 만들거나 기계로 제작한 요소, 그리고 일상에서 발견한 사물들을 모아 하나의 설치 작업으로 구성하는데, 이 과정은 수집하고 보존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배열하는 저만의 작업 방법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영화나 미술사에서 영감을 받아 조각, 영상, 사진,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작업하고, 때로는 장소 특정적 협업을 통해 진행하며 그 지역의 수공예 기술을 작업에 반영하기도 합니다.
제 작업은 하나의 ‘발견’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종의 고고학적 접근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어떤 재료를 발견한 뒤에는, 그것이 제 작업 안에서 어떤 의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미지가 조각이 되기도 하고, 사물이 악보처럼 기능하기도 하며, 예를 들어 책 한 권이 하나의 프로젝트 전체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이런 작업들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요소들이 겹쳐지는 연작의 형태로 발전합니다. 매체 간 이동, 형태의 변환, 그리고 장소와 맥락 사이를 오가는 과정이 제 작업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Passage 시리즈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이 작업은 제가 머물며 작업했던 여러 도시에서 찍은, 갈라지고 손상된 아스팔트 바닥 사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계 니트 직물들의 모음입니다. 도시의 바닥이 일종의 유동적인 구조로 변하면서, 일상적인 바닥이면서 동시에 기록, 지도, 기억처럼 읽히게 됩니다. 전시에서는 퍼포머들이 이 직물들을 접고 펼치며 계속해서 새로운 형태로 배열하는데, 이는 상상 속 공간과 실제 촉각적인 공간 사이를 오가는 움직임을 만들어냅니다.
(* “I Packed My Bag”(독일어: Ich packe meinen Koffer)는 한 사람이 “나는 여행 가방을 싸고 ~을 가져간다”라고 시작해 물건 하나를 말하면, 다음 사람이 앞 사람이 말한 것을 그대로 반복한 뒤 새로운 물건을 하나씩 덧붙여 이어가는 기억력 게임으로, 순서와 내용을 정확히 외우는 것이 핵심이며 틀리거나 빠뜨리면 탈락하는 간단하지만 집중력과 기억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독일식 놀이입니다.)
수년간 저는 독일과 한국, 뒤셀도르프와 서울,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적·공간적 맥락 사이를 오가며 작업해 왔습니다. 비록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내고 있지만, 이러한 환경과 관계들은 제 작업의 재료 선택과 시각 언어, 그리고 다루는 주제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3년에는 과거 10년 전 거주했던 도시인 암스테르담의 Goethe-Institut Amsterdam에서 「Crippled Symmetry」라는 제목의 슬라이드 프로젝션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이 작업에서는 16mm 필름 보관 상자들을 검은색으로 배열해 장식적인 바닥 패턴을 만들었는데, 이 상자들은 수년간 연구소 다락방에 보관되어 있던 아날로그적 잔재였습니다.
한때 언어 교육과 문화 전달을 위해 사용되었던 이 필름들은, 다양한 문화권의 장식 패턴에 대한 저의 기억을 바탕으로 하나의 시각적 아카이브로 새롭게 해석되었습니다. 여기서 재료는 여러 층위가 겹쳐지고 변화하는, 끊임없이 변형되는 구조로 나타납니다.
저는 2005년에 처음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한국 최초의 예술가 레지던시 중 하나였던 홍대의 Szamzie Art Space에서 레지던시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시기 홍대는 예술과 음악이 활발하게 어우러진 공간이었죠. 이 3개월의 경험 이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이후 몇 년간 한국을 계속 오가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비디오 프로젝트로 선전과 홍콩을 여러 차례 오갔기 때문에, 한국은 종종 중간 기착지이기도 했습니다.
2011/12년에는 Incheon Art Platform에서 또 한 번 레지던시에 참여했습니다. 이 시기를 계기로 서울과 당시 생활 기반이었던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2017년에는 Chung-Ang University에서 사진 전공 교수직을 맡게 되면서, 보다 장기적인 체류와 비자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남산에 작업실을 잡게 된 건 꽤 우연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지역과 깊은 애착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곳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산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경리단길에도 살았고, 다시 이곳으로 이사할 예정이라, 이 일대는 이제 저에게 하나의 ‘집’처럼 느껴집니다.
한국에서 외국인 예술가로 활동하는 경험은 어떠신가요? 독일에서의 작업과 비교했을 때 어떤 어려움이나 차이점을 느끼셨는지, 또 이곳에서 얻은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경험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한국에 거주하게 되면서 시각적 언어나 작업의 주제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한국에서 외국인 예술가로 활동하는 경험은 저에게 풍요로움과 도전이 공존하는 상태로 느껴집니다. 가장 큰 장벽은 역시 언어입니다. 일상적인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리서치나 전문적인 대화처럼 예술적 맥락에서는 금세 한계에 부딪히곤 합니다. 많은 자료에 접근하기가 어렵고, 네트워크 역시 쉽게 형성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재료를 구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떤 재료는 아예 구할 수 없거나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합니다. 모든 과정에 더 많은 에너지가 들고, 많은 일이 개인적인 인맥이나 중개를 통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점은 때로는 작업에 있어 일정한 신중함이나 거리감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작업 방식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가능한 것에 더 집중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대안을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약 3년 전부터 도자 작업을 시작했는데, 한국에서는 고온 소성 도자가 주를 이루는 반면 저는 저온 소성과 매트한 유약 표면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적합한 유약이나 점토를 구하기가 쉽지 않거나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대신 색이 있는 슬립(slippery clay)을 활용하거나 테라 시질라타(Terra Sigillata) 기법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대에서 유래한 점토 슬립을 연마해 유약 없이도 부드럽고 비단 같은 표면을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우회적인 방법들은 제 작업의 시각적 언어를 때로는 미묘하게, 때로는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의 삶과 작업은 예술적으로나 일상적으로 많은 풍요로운 순간을 가져다줍니다. 지리적으로도, 구조적으로도 ‘사이’에 놓인 상태는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지만, 오히려 제 작업의 중요한 일부로 스며듭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곳에 기반을 마련했지만, 앞으로도 두 도시를 오가며 활동하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합니다.
한국에서의 삶이 작업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었는지, 혹은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조금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과거에는 제 작업이 비교적 ‘지원 제도의 리듬’에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재정을 확보하며, 그것을 정당화해야 하는 과정이 하나의 사고방식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특히 지원 제도와 관련된 구조적 조건이 다르게 작용합니다. 다만 서울에서의 교수직을 통해 비교적 안정적인 기반을 갖추게 되면서, 이제는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을 세우고, 과정 중심적이며 실험적으로 작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고, 프로젝트 또한 보다 유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곳에서 오랜만에 다시 개인 작업실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주로 집에서 작업하거나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며 프로젝트 단위로 작업해왔습니다. 하지만 고정된 작업 공간은 많은 것을 바꿉니다. 지속성과 집중력을 만들어주고, ‘정착했다’는 감각을 주며, 이는 곧바로 작업에도 반영됩니다.
남산 주변에서 특별히 애정이 가는 장소가 있으신가요? 작업에 영감을 주거나, 혹은 마음을 편히 쉴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남산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애정이 쌓인 장소들이 있습니다. 특정한 ‘최애 장소’라기보다는, 이 지역 전체의 분위기와 구조가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이웃과 친구들이 함께 살아가는 일상, 어느 정도의 고요함, 그리고 균형을 되찾기 위해 자주 찾는 작은 공원, 자꾸 다시 가게 되는 몇몇 카페와 공간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환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산과 가까운 거리, N Seoul Tower가 보이는 풍경, 그리고 그 주변의 산책로들은 저에게 활력을 주면서도 동시에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런 일상은 거의 자연스럽게 제 작업실 생활과 맞물려 스며듭니다.
전체적으로 남산은 저에게 일상의 삶과 예술적 실천 사이에 놓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예술적 영향은 특정 인물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수공예적 기법이나 역사적 오브제, 그리고 이미지 전통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제 작업에 중요한 공명 지대를 형성합니다. 현재 저는 특히 한국 전통 회화와 병풍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병풍은 회화와 조각 사이를 오가는 공간적 구조로서, 이러한 관심은 현재 작업에도 반영되고 있습니다.
병풍은 이미지와 조형 사이에 놓인 일종의 공간 구조로서, 그 이동성과 다층적인 기능—실용적이면서도 장식적이고, 동시에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책가도 병풍은 책장과 다양한 사물들을 배치해 사회적 지위나 삶의 방식을 드러내는데, 이는 “나는 내가 읽고 소유한 것이다”라는 시각적 자기 표현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래픽적인 명료함과 공간, 평면, 오브제 사이의 관계성은 제게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또한 종이 경첩처럼 병풍이 양쪽으로 펼쳐질 수 있게 하는 세부적인 제작 방식 등, 장인적 디테일 역시 제 작업에 중요한 영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어떤 작업을 진행 중이신가요? 또 가까운 미래에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현재 저는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며 이를 발전시키거나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주요 작업 중 하나는 Das imaginäre Museum(1952–1954)에서 출발한 작업입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시대의 조각 사진들을 맥락에서 분리해 보편적인 양식 비교를 시도한 이 책은 세 권의 시리즈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는 각 권을 바탕으로 기존의 기준이나 분류 방식을 다시 바라보고,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배열해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현재 한국 전통 회화, 특히 화접도(꽃과 나비)를 모티프로 한 연작 작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 미술 서적의 이미지를 참고해, 정교하게 그린 나비 모티프를 한 화가가 수채화로 책 『Des bas-reliefs aux grottes sacrées』의 페이지 위에 직접 옮겨 그리는 방식입니다.
프로젝트 기획 및 인터뷰: Leslie Klatte
아티스트: Sascha Pohle
이미지 기록: Leslie Klatte, Yoonjung Daw
SNS Shorts: Yoonjung Daw
한국어 번역: 신소희
영어 번역: Leslie Kla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