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아티스트와 DJ 바키(VAKKI)와의 인터뷰
네덜란드에서의 수학 시절, Stedelijk Museum에서 마주한 ZERO Group 회고전은 빠키(VAKKI)에게 하나의 감각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빛과 공간, 반복과 진동을 조형의 언어로 확장해 온 ZERO 그룹의 태도는 그녀의 작업 세계에서 중요한 출발점으로 자리한다고 말하는 그녀. 현재 남산을 작업의 거점으로 삼고 있는 빠키는, 기하학적 구조와 리듬, 에너지의 흐름을 결합한 설치 작업을 통해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감각을 탐구합니다. 유럽에서의 경험과 독일 ZERO 그룹의 유산을 오늘의 조형 언어로 풀어내는 그의 작업 세계를 이번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세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 아티스트인지 자기 소개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기하학적 구조와 패턴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시각 예술가 빠키(VAKKI)입니다.
제 작업은 개념적인 설명보다 이미지와 영상으로 접했을 때 더 직관적으로 전달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에 주요 전시에서 선보였던 대표작 이미지를 함께 준비했습니다.
음악 작업, 설치 작업, 그리고 수업은 형식은 다르지만, 모두 사람과 공간 사이를 흐르는 감정의 리듬을 감지하고 조율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저에게 이 활동들은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적 태도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확장하는 과정이며, 그 리듬을 드러내기 위한 조형적 언어로 이어집니다.
작업실을 남산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남산은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면서도, 도시의 분주함과 고요한 리듬을 동시에 품고 있는 공간이라고 느낍니다. 저는 작업 과정에서 에너지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남산은 서로 다른 두 흐름이 조화롭게 만나는 지점이자, 순환과 리듬, 그리고 호흡의 감각을 지속하게 해주는 장소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수학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럽에서의 경험이 당신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네덜란드는 질서와 유희가 공존하는 독특한 시각 문화를 지닌 나라라고 느꼈습니다. 유럽의 디자인과 미술은 구조적으로 매우 명료하면서도, 그 틀 안에서 놀이와 실험, 자유로움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고전적인 예술 정신과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태도가 공존하는 환경은 인상 깊었습니다. 클래식한 조형 언어에서 기술, 미디어, 퍼포먼스가 결합된 전위적인 실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표현 형식을 일상 속에서 접하며, 시각 예술을 하나의 장르가 아닌 다층적인 감각이 상호작용하는 생태계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유럽의 거리와 빛, 공기 속에서 체감했던 선명한 감각은 사물과 현상을 보다 또렷하게 인식하게 만들었고, 빛과 공간의 미묘한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빛과 컬러를 탐구하는 저의 작업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습니다.
디제이로도, 교수로도 활동하고 계신데요. 미술과 음악을 동시에 탐구할 때 어떤 장점이나 시너지가 있다고 느끼시나요?
시각과 청각은 서로 다른 표현 언어처럼 보이지만, 근원적으로는 ‘리듬’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장르를 구분하는 것보다, 타인과 감정의 진동을 함께 공유하는 경험 자체를 좀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를 들어 디제잉을 할 때 관객의 움직임과 반응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제 시각 작업에서 색과 형태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음악이 시간의 리듬을 다루는 언어라면, 미술은 공간의 리듬을 다루는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영역을 함께 탐구하며, 저는 시간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감각적 경험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설치 작업은 음악의 구조와 파동에서 출발해 이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저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시작된 ZERO Group의 작업 세계에 오래전부터 큰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ZERO 그룹의 작가들은 단순한 시각적 실험을 넘어 빛과 조형 언어, 반복과 진동, 시간의 개념을 작품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며 세계를 새롭게 구성했고, 이러한 퍼포먼스적 실천과 세계와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방식,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철학적 태도는 지금까지도 제 작업에 지속적인 자극을 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Heinz Mack의 작업은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사막에서 펼친 퍼포먼스나 바람·빛·속도와 상호작용하는 설치들을 통해, 예술이 공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몸이 함께 빚어내는 살아 있는 현상이라는 감각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영감을 얻기 위해 자주 찾는 남산의 비밀 장소를 알려주세요.
엄밀히 말해 비밀 장소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자주 찾는 곳은 남산공원 순환 산책로에서 갈라지는 작은 숲길입니다. 오래된 나무들이 밀집한 그 구간에서 가지의 분기 구조와 뿌리의 프랙탈적 패턴, 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선형적인 조형감을 유심히 관찰하곤 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그 길을 걷는 시간은 제게 중요한 감각 훈련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 좋아하는 장소는 남산도서관 뒤편의 조용한 벤치입니다. 이곳에서는 바람 소리와 사람들의 발걸음, 멀리서 들려오는 도심의 소음이 서로 겹치며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그 미세한 간섭의 감각을 느끼며 강아지와 산책하다가 잠시 앉아 머무는 시간을 즐깁니다.
이 두 공간은 자연과 도시가 서로의 호흡을 빌려 하나의 장면을 이루는 곳이라고 느껴집니다. 일상 속에서 감각이 가장 또렷해지는, 제게는 아주 특별한 장소입니다.
프로젝트 기획 및 인터뷰: 신소희
아티스트: 빠키(VAKKI)
이미지 기록: Leslie Klatte, Yoonjung Daw
SNS Shorts: Yoonjung Daw
독일어 및 영어 번역: Leslie Kla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