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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칼럼 '언어를 말하다'
바이코프스키!

일러스트: 다양한 피부색의 웃음 이모티콘이 들어 있는 말풍선과 입을 직사각형으로 넓게 벌린 사람
다시마 나요, 안뇽, 씨 유 레이터, 엘리게이터, 바이 바이 하와이, 잘 가 자메이카, 그때 바르샤바, 곧 바나나, 나중에 바이올린, 다음에 바람개비, 좋은 주먹 보내고, 먼찬에요! | © 괴테 인스티투트/일러스트: Tobias Schrank

하스나인 카짐은 오랫동안 겉보기에 재밌어 보이는 유사 유머가 담긴 단어 왜곡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완전히 허튼 그 매력에 조금은 굴복하게 되었다. 뻔한 말장난에도 웃을 수 있다면 많은 것을 더 잘 견딜 수 있지 않겠는가? ‘언어와 상호작용’이라는 대주제에 대한 우리 칼럼니스트의 마지막 기고문이다.

안녕 안뇽 안늉, 여러분! 요즘 우리는 사려 깊고 포용적이며 올바른 언어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다. 어떤 단어가 적절한지, 그리고 더 이상 어떤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언어에 대해 고찰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흔한 표현으로 가끔씩 여기저기서 ‘도를 넘어’서거나, 또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인상을 받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를 시험에 빠뜨리고, 목뒤의 모든 털이 쭈뼛 서며, 주먹을 꾹 쥐게 만드는 표현들이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Zum Beispiel(예를 들어)’ 대신 ‘zum Bleistift(연필을 들어)’라고 할 때가 그렇다. 또는 작별 인사를 할 때 ‘바이코프스키’, ‘잘가새우’, ‘안녕 안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생일을 축하할 때는 ‘진심으로 축구해’라고 하며, 벤치에 앉아 약간 이동할 때는 ‘움직 조금하다’라고 하며, ‘건배’를 뜻하는 ‘Prost’와 ‘Stoß an’도 ‘Prösterchen’나 ‘Stößchen’라고 하며 잔을 부딪힌다. 이런 사람들은 ‘그 잡채’로 아주 친절하고, ‘코피’나 ‘숌페인’을 마시고 ‘돔배’를 피우며, 말을 짧게 줄이거나 귀엽게 ‘와 멋찌’라거나 ‘그때 봐니바니’라고 하며 ‘Guten Abend(좋은 저녁)’도 ‘Na Bernd’라고 한다. 전화벨이 울리면 이들은 ‘Telefon(텔레폰)’이 아닌 ‘Teflon(테플론)’을 받는다. 이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홀룡한’ 일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다.

재밌지는 않은

그러나 오해는 말라. 나는 유머와 말장난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다. 인생이 정말 재밌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어떤 것들은 유머가 있어야만 견딜 수 있다. 유머는 다소 품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도 인간의 상호작용이 품위 있게 이루어지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시인 요아힘 링겔나츠(Joachim Ringelnatz)는 “유머는 우리가 폭발하지 않게 해 주는 버튼이다”라고 했다. ‘꾸믈 꾸듯’ 멋진 말이 아닌가!

그러나 이렇게 유사 유머가 담긴 왜곡되고 축소된 말들은 눈엣가시, 잠깐, 신발 속의 돌, 아니, 나의 신경을 엄청나게 거슬리게 한다. 그런 것을 많이 듣거나 읽을수록 더욱더 예프스키 ‘마흔에 들지 않아!’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유사하다는 것은 진짜가 아니며, 그저 모방하고 따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유사 유머라는 말은 정말로 재밌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알겠능가?’ 모든 동물에게 자기만의 즐거움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불쾌한 말장난을 내 노트북에 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어리석은 말장난에 대해 내가 소셜 미디어에서 비판하고 나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 어리석은 말장난의 폭격을 받고 말았다. ‘거북해요, 거북이씨!’ 나는 ‘이건 조랑말도 안 돼!’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만일에 만만의 콩떡에 그런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물은 엎질러졌고, 독은 깨져버렸다. 나는 어떤 표현들은 너무 바보 같아서 재밌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웃을 수 있다면 더 잘 견뎌낼 수 있는 상황들이 있다. 비록 그것이 바보 같은 말장난일지라도 말이다. 삶의 진지함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따금 얄팍한 것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오케이크’, 그럴 ‘뜻’하다고 생각했고, 이제 나도 그렇게 하려 한다.

그리고 자, 그 후로 나는 아침이면 얼굴에 난 매트리스를 긁어내고 저작 장치에 솔질을 하는데, 특히 ‘마느리(마늘)’들을 먹었을 때는 더 그렇다. 이런 거창하게 정신 나간 말장난은 내게 끊임없은 기쁨의 원천이 되어 주었다.

그 밖에도 나는 11월 12일이 만화가 바스티안 멜닉(Bastian Melnyk)이 창시한 ‘나쁜 말장난의 날’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또 말장난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예를 들어 ‘팔(Arm)이 없는 것보다는 가난한(arm) 것이 낫다’처럼 단어의 중의성을 활용하는 다의어, 독일의 지역 ‘바슈타인(Wahrstein)’과 ‘사실이다(wahr sein)’의 발음의 유사성을 활용해 ‘그것이 사실일 리가 없어’를 ‘그것이 바슈타인일 리가 없어(Das kann ja wohl nicht Warstein!)’라고 하는 것처럼 단어의 소리가 유사한 것을 활용하는 유음중첩법, 또는 ‘가구 포장업자(Möbelpacker)’를 ‘파구 고장업자(Pöbelmacker)’라고 하는 것처럼 알‘바’벳을 서로 ‘파’꾸는 단순한 두음전환과 같은 것이 있다. ‘나쁜 말장난의 날’은 국경일이 되어야 한다!

찌푸리는 대신 말하기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언어에 대해 더 자주 고찰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 고찰하고, 우리의 어휘를 평가하고, 존중하며 배려하는 태도를 취하고, 또 모든 단어마다 신중히 저울질하는 대신에 우리의 말하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자.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생각 없이 한 말에 바로 기분 상해하지 않으며, 그 대신 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해 보자. 상대가 사용한 표현과 그것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에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말이 가진 힘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부적절한 어조로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에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오키도키, 친구 식구 여러분, 나에게 괴테 인스티투트를 위한 여섯 편의 글을 쓸 기회가 주어졌고, ‘언어와 상호작용’이라는 주제를 골랐다. 이제는 ‘마지막에 막, 집에 갈 시간을 지나, 마지막 고개를 넘어, 아쉬운 안녕이다’. 이제 아쉽지만 작별을 고‘소’해야 한다. 이제는 할 말도 탈 말도 없다. 읽어주셔서 ‘함’사갑니다. ‘다시마 나요, 안뇽, 씨 유 레이터 엘리게이터, 바이 바이 하와이, 잘 가 자메이카, 그때 바르샤바, 곧 바나나, 나중에 바이올린, 다음에 바람개비, 좋은 주먹 보내고, 먼찬에요!’
 

언어를 말하다 – 언어학칼럼

본 칼럼 ‘언어를 말하다’는 2주마다 언어를 주제로 다룬다. 언어의 발전사, 언어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언어의 사회적 영향력 등 문화적, 사회적 현상인 언어를 주제로 한다. 언어 전문가나 다른 분야의 칼럼니스트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관심 주제에 대해 6개의 기고문을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