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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칼럼 '언어를 말하다'
나는 사춘기가 오기도 전에 랩을 만났다

일러스트: 세미프로필에 있는 두 여성. 그들은 서로 이야기한다.
좋은 인터뷰가 되려면 제대로 된 질문이 필요하다. | © 괴테 인스티투트/일러스트: Tobias Schrank

수많은 인터뷰, 그때마다 받는 엉터리 질문들. 타이가 트레체는 여성들이 랩 비즈니스에서 어려움을 겪는지 추측해보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랩이 그녀에게 개인적으로 미친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그녀가 이번 인터뷰에서는 누구도 물어봐 주지 않았던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 잘 지내. 너는? 나도 잘 지내.
이렇게 진부하게 주고받는 인사말은 ‘여성으로서 랩 비즈니스에 있으면 힘든가요?’처럼 매번 받는 똑같은 인터뷰 질문과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투어를 다닐 때면 나는 홍보 용품을 담은 상자와 여행 가방이 무거워서 힘에 부친다고 느낀다. 또 나는 일행으로 간 많은 남자들 중 한 명에게 이 짐을 들도록 하는 것에 딱히 반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래퍼인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음, 모르겠다. 한 번도 다른 입장에 서 보지 않았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쁜 인터뷰와 좋은 인터뷰

– 언제부터 랩을 하기 시작했나요?
– 9살 때부터요.
– 어떻게 랩에 입문하게 됐나요?
– 라디오와 MTV를 통해서요.

내 짤막한 답변으로 미루어 보면 내가 이 인터뷰를 지루하게 느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인터뷰라면 나는 절대로 SNS 계정에서 이것을 공유하거나 홍보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 래퍼와 이야기할 때는 약간의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터뷰 대상자를 독려하면서도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읽을거리를 만들어 줄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불어 터진 스파게티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잘 진행되는 인터뷰는 관심과 경청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거기에 질문자가 자세한 답변까지 이끌어낸다면 하나의 대화가 만들어진다. 인터뷰는 한 사람이 묻고 다른 사람이 답하는 심문처럼 진행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열린 질문이 많을수록 그 뒤에 숨은 이야기들이 더 흥미로워지는 법이다.

‘랩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라는 질문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우선 나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해본다면, 힙합과 관련된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성역할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점점 더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라면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상이 얼마나 다른지 점점 더 깨닫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으로서 랩의 세계에서 더 힘든지, 혹은 더 쉬운지가 아니라, 여성이 삶에서 전반적으로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신은 어렸을 때 당신의 성별과 그에 따른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적인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평생 동안 풀어가야 할 과업이기 때문이다. 성역할은 배워서 익히는 문제이므로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의 것이다.

어렸을 때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 나도 힙합 허가권을 얻기 위해 싸워야 했다. 자랄 때 집에서 라틴 음악, 록, 블루스, 포크 음악을 들었다. 내가 라디오를 켜면 라디오는 바로 꺼졌다. 내 주변에 있던 어른들이 그 소리를 공격적이고 외설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내가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시간은 5분으로 제한되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똑같게 들렸다.

가사에서 그들은 인종차별적 용어, 스스로를 포주라 일컫는 매춘부 고객들의 이야기, 무대 뒤에서 비치 또는 매춘부를 무릎 위에 앉혀 놓은 남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왕년에 ‘우리는 하나의 세계’ 그리고 평화 & 사랑이라는 모토 아래 자유를 사랑한 히피였던 나의 부모님에게 그것은 인간을 멸시하는 음악이었다. 실속이 없는 음악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힙합은 일종의 계시였다. 나는 세계관, 역사, 사고방식의 차이를 더 잘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힙합은 내 감정을 언어로 바꿔주었다. 영향력이 가득 담겨 나온 말을 듣는 일은 신선하고 진실한 경험이었다.

아주 일찍 찾아온 사춘기를 맞이하기 직전이었다. 랩은 아주 명확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나는 그것에 몰두했다.

틱택토(TicTacToe)의 노래 ‘올웨이즈 울트라(Always Ultra)’를 통해 나는 월경 때 겪는 소녀들의 기분 변화가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을 배웠다. 슈베스터 에스(Schwester S)의 노래 ‘야, 클라(Ja, Klar)’는 남자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모든 것을 참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일깨워주었다. 당시 릴 킴(Lil Kim)이나 오늘날 카디 비(Cardi B)는 여성들도 구강성교를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랩에 담았다. 여성들이 하는 랩은 여성의 (몸)관점에 대한 주제들을 다룬다. 특히 성에 관련된 내용은 어린 소녀들에게 중요하다.

랩은 학교나 가정 환경에서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지 못한 나에게 성교육을 해 준 선생님과 같았다. 그리고 2022년에도 랩은 한 여성으로서의 삶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랩은 나를 깨우쳐 주었다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힙합은 나를 오히려 남성적인 방식으로 깨우쳐주고 남성적으로 사회화시켰다. 이는 내가 멕시코로 이주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당시 독일에서는 백인 래퍼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갱스터 랩은 이제 막 태동하고 있었다.

나는 양쪽 진영(‘being a bad ass’와 ‘down-ass bitch’) 사이에 있었다. 즉, 힙합이 양가성을 갖고 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랩은 나에게 여성으로서의 역할상을 가르쳐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성을 거부하고 그것에 맞서 저항하라는 여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나는 가사가 전달하는 메시지에는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상화하는 것은 개인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을 형성한다. 그것을 모방하고 통합시키도록 하는 것은 음악이 갖는 흔한 부작용이다. 그렇기에 소녀들을 겨냥해 어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내가 모든 티셔츠에 페미니즘 문구를 새겨 넣고 그런 신조 아래 모든 인터뷰를 하는 래퍼는 아니지만, 나는 페미니즘적 접근 방식을 적극 지지한다.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현재 펨파워먼트(Fempowerment) 코치로 활동하며 젊은 여성 및 소녀들과 함께 또 다른 차원에서 개인 코칭과 워크숍 등을 통해 그들에게 새로운 자신감, 자존감, 자기 효능감을 심어주고 있다. 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일이다.

힙합은 나를 만들었다. 여성으로서 내 역할에서도.
 

언어를 말하다 – 언어학칼럼

본 칼럼 ‘언어를 말하다’는 2주마다 언어를 주제로 다룬다. 언어의 발전사, 언어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언어의 사회적 영향력 등 문화적, 사회적 현상인 언어를 주제로 한다. 언어 전문가나 다른 분야의 칼럼니스트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관심 주제에 대해 6개의 기고문을 연재한다.